▲ 김진호 편집국장

`설득의 심리학`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는 동물생태학적 관찰에서 발견된 `고정행동유형(fixed-action patterns)`과 `유발기제(the trigger feature)`라는 개념으로 인간심리의 많은 부분을 설명했다. 실제로 한 동물생태학자의 실험에서 수컷 참새는 자신의 영역내에서 다른 수컷 참새의 빨간 가슴털이 꽂혀있는 진흙덩어리를 발견하면 마치 그것이 자신의 경쟁참새인 양 맹렬하게 공격한다. 그러나 빨간 가슴털이 제거된 수컷 참새의 박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이 참새의 자기 방어시스템 유발기제는 빨간 가슴털인 셈이다.

요즘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와 당내 친박계, 그리고 청와대 간에 벌어지는 힘겨루기를 보다보면 왠지 `참새의 빨간 가슴털`같은 유발기제가 작동된 듯한 인상이 짙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유승민 원내대표를 미워하게 된 이유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더욱 그렇다.

한때 친박계의원으로 분류됐던 유승민 원내대표와 박 대통령은 왜 이렇게 소원해졌을까. 유 원내대표는 17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 10·26재보궐선거를 거쳐 3선 의원을 지내고 있다. 지역구를 대구로 택한 것은 아버지 유수호 전 의원의 지역구였기 때문이다. 유 의원의 아버지인 유수호 전 의원은 대구지방법원 판사출신으로 `여당의 양심세력, 여당의 비판세력`을 자처하며 대구 중구에서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5대 총선에서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가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남다른 정치적 소신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인지 유 원내대표 역시 평소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하는 것이 진정한 로열티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래서 그는 2013년 1월 박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첫 인사로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에 언론인 윤창중씨가 임명되자 “그는 극우다. 사퇴하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또 2013년 합참의장 인사청문회에서는 “좌파정권이라고 비난받던 노무현 정권은 8.8%씩 국방예산을 늘렸는 데,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보수정권이라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각각 연평균 5.3%, 4.1% 늘린 것은 보수정권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최근에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없는 복지를 약속한 박 대통령의 공약에 정면으로 반대한 것 역시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른 일이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를 배웠다. 박 전 대통령은 2인자와 항명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이후락, 박종규, 김형욱 등의 인물을 서로 경쟁시키며 견제했고, 권력에 위협이 되면 가차없이 내쳤다. 국회조차도 자신의 명령에 따르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실제로 1971년 공화당 의원 23명이 당시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당시 공화당 실세였던 김성곤·길재호·김진만·백남억 의원 등이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곤욕을 치르고 정계를 떠나는 사건도 있었다.

박 대통령 역시 대구에서 차세대리더로 발돋움하는 유 원내대표가 고울리 없었을 것이고,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한 행보는 항명사태로 간주했을 법하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란 표현을 동원해 퇴진을 요구했는데도 들은 척 않는 유 원내대표를 청와대가 나서 더 압박하려 해도 부담스럽기만 하다. 가뜩이나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두언, 이재오, 이병석 의원뿐 아니라 새누리당 재선의원 20여명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적극 옹호하고 나서니 일은 꼬여만 간다. 이번 사태가 내년 총선 공천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권력투쟁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자칫 세분열로 조기 레임덕사태가 우려된다. 어떻든 권력투쟁 양상이 길어져봤자 망신살 뻗칠 일뿐이니 적정선에서 타협은 될 것이다. 그 와중에 대구의 차세대 리더로 떠오른 유 원내대표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