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봄이 되면 채소 씨앗을 뿌렸다. 씨앗이 파랗게 고개를 들고 올라오면 이른 새벽부터 자식 돌보듯 정성을 다했다.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는 채소를 솎아서 시장으로 나갔다.
장날이 되면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려고 일찍 일어났다. 어머니의 발걸음은 매우 빨랐다. 이 십리 길을 가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큰 걸음을 쫓아가느라 어린 나는 힘이 들었지만 시장입구에 들어서면 기운이 났다. 면 소재지 옆 넓은 공터에서 오일장이 열렸다.
어디서 왔는지 시장 안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사람들 틈을 겨우 비집고 들어간 어머니는 채소 보따리를 풀었다. 정갈하게 다듬은 채소를 소쿠리 위에 올려놓고 어머니는 숨을 돌렸다. 어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오십 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상추와 쑥갓을 샀다. 어머니는 미리 담아놓은 소쿠리에 상추를 한 줌 더 얹어 주며 덕담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기분이 좋은지 눈깔사탕 하나를 내게 건넸다. 한 줌 더 올려주는 어머니가 이상해서 그 이유를 물었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셨다. “니가 보기엔 덤으로 주니까 엄마가 손해 본 거 같나. 사는 사람이 기분 좋게 가면 그 복이 파는 사람에게로 돌아오는기라. 그래서 장사도 더 잘 되지.”
덤 때문일까. 어머니의 채소는 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일찍 동났다. 채소를 다 팔고 집으로 돌아갈 땐 가게에 들러 동생들에게 줄 과자며 사과를 샀다. 과일가게 주인도 사과 몇 개를 덤으로 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 시절 덤은 인심이었다. 요즘 대형마트에서는 채소를 달아서 판다. 야박해 보여서 시장 보는 재미를 잃는다. 재래시장의 정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용돈을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줄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은 학교 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덤은 기분을 좋게 하는 묘약이다. 물건의 덤처럼 인생에도 덤이 있다.
삼촌이 암에 걸렸었다.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삼촌에게 의사는 더 이상 치료해 줄 것이 없다고 했다. 실의에 빠진 삼촌은 하늘을 원망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아무리 원망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삼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황토 찜질이 좋다는 말에 솔깃하여 황토방을 드나들며 정성을 다했다. 또 생식이 좋다 하면 아픈 몸을 이끌고 신들린 사람처럼 온 산천을 헤매다녔다. 가락꼬지처럼 비쩍 말라 회복될 기미가 없던 삼촌은 차츰 시간이 흐르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삼촌은 암도 이기고 도회지 생활을 청산했다. 한적한 시골에서 채마밭을 가꾸며 산다.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하루를 맞는다는 삼촌은 자신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말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어서 고맙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어쩌면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지 못하고 많은 욕심 때문에 힘들게 사는 것은 아닐까. 작은 것에도 소중한 마음을 담을 때 멋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불평을 늘어놓고 살던 나는 삼촌을 보며 내 삶을 되돌아봤다. 탈 없이 자라는 자식과 연세가 많으신 데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사시는 부모님이 계셔서 행복하다. 평소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던 작은 일도 이젠 고맙고 감사하다.
물건을 살 때 얻는 덤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덤은 더 소중한 것이리라. 하루가 덤으로 주어진 인생이라고 한다면 더 많은 애착과 열정을 쏟으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