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日 극비문서 공개
`1894년 발견 프랑스배 선주이름` 주장 뒤집어

▲ 나가이 요사부로의 청원서에 리앙쿠르가 나온다. 하지만 일본 극비 문서에 리앙쿠르는 이안굴에서 불렀던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고 했다. 아래 사진은 조선에서는 이안굴로 불렀다는 기록.

독도의 옛 이름 리앙쿠르는 지난 1894년 프랑스 배가 독도를 발견 선주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라는 주장을 뒤엎는 일본 극비 문서가 공개돼 독도가 한국 땅을 또다시 입증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리앙쿠르는 동도에 있는 큰 암굴을 이조시대 이안굴(李安窟)에서 불렀다는 것.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부산외대 일어학과 명예교수·사진)이 본지 기자에게 처음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문서에 이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안굴은 이조시대 안용복의 굴이라는 것이 김 소장의 주장이다. 김 소장은 시마네현 다케시마 사료관을 방문 수집한 문서 `日韓漁業交涉資料三` `일본해의 죽도에 대하여`란 자료에 이 같은 주장이 나와 있다는 것.

이 자료는 극비(極秘)표시에 쇼와 27년 2월2일자 1. 개설, 2 령유의 경위, 3 도명의 변경, 4. 경영, 5. 한국의 죽도에 대한 주장 부록 독도의 지도가 있다. 이 사료 5번째 한국이 죽도에 대한 주장이란 제목에 “리앙쿠르라는 것은 동도에 있는 큰 암굴을 이조시대 `李安窟(이안굴)`이라 불렀던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고 기록돼 있다는 주장이다.

이안굴은 일본 발음으로 리안쿠루라고 발음한다는 것, 김 소장은 이 자료는 지난 1952년 2월2일 작성된 사료로 시마네현이 일본 내무성사료에 낸 사료다. 이 사료의 내용은 죽도(독도)의 역사개념을 정부에 확고히 심어주기 위한 사료다.

이 같은 내용 18장으로 만들어졌고 일본이 독도를 먼저 발견하고 명치 전부터 어부 나가이 요사부토가 고기를 잡은 곳이라는 일본 영토의 확실성을 나타내고자 시마네현이 일본 내무성에 제출한 극비문서다.

일본은 지난 1905년 2월15일 러일 전쟁을 앞두고 동해 전투에서 앞서 해군기지를 만들기 위해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시킨다는 뜻에서 내무성 훈련이 내려졌다.

하지만, 훈령이 내려지기 전 울릉도 독도를 왕래하면서 불법으로 고기를 잡았던 오키섬 어부 나가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가 고기를 잡고자 명치 37면 9월29일자로 내무성에 리앙쿠르를 편입시켜 달라는 청원서를 냈다.

나가이 요사부로가 청원서를 내무성에 낸 것은 모두 6장이며 붓글씨로 작성했다. 내용은 죽도(리앙쿠르)는 오키섬 서북 85리, 울릉도 동남 55리에 위치한 무인도다. 해산물이 풍부하고 특히 물개가 많다.

물개는 죽도에만 번식하고 있는 희귀 동물로 그동안 많이 잡아 소득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 일본 땅으로 편입되면 많은 투자를 해 소득을 올리겠다고 다짐하는 문서다.

이 문서의 마지막에는 명치 37년 9월29일 시마네현 吉郡西鄕町大字西町 中井養三郞 내무대신 자작 芳川顯正殿, 무대신 남작 小村新太郞殿 농상무대신 남작 情浦主吾殿이 적혀 있다.

부록에는 리앙쿠르섬 약도와 동도, 서도 양도에 실물이 번식하는 곳, 식수가 나오는 곳, 어부들의 숙소가 이는 곳, 고기가 많이 있는 곳, 특히 물개가 많은 있는 곳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이와 같이 극비문서가 1905년 나가이 요사부로 청원보다 뒤에 작성돼 있는데도 리앙쿠르는 이조시대 이안굴에서 불렸다고 기술한 것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증명된 것이라는 게 김 소장의 주장이다.

김 소장은 “따라서 지금까지 알려진 리앙쿠르는 프랑스 선박이 발견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극비문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며 “이 자료를 보면 독도를 우리나라에서는 이안굴이라고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울릉/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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