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에 관한 사담들 ` 윤성택 지음 문학동네 펴냄, 136쪽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온 시인 윤성택은 데뷔 5년 만인 2006년 남다른 시각과 촘촘한 감성의 그물망으로 걸러낸 현실세계 속 각양각색의 풍경들을 담은 첫 시집`리트머스`를 펴냈다.

“잘 빚어진 시에 대한 고전적인 예술 지향과 언어에 대한 외경심을 깊이 간직한, 최근 시단의 비주류(?)의 영토를 진중하게 답파하는 젊은 시인”(김수이)이라는 평을 받은 그 첫 시집은 요란스럽지 않게, 그렇지만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첫 시집이 나온 후 7년이 지난 지금, 윤성택 시인의 두번째 시집 `감(感)에 관한 사담들`(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첫 시집이 비정하고 삭막한 현실의 치부를 포착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주었다면, 두번째 시집이 독자들을 안내하는 곳은 `기억`이다. 기억은 과거의 일이지만, 존재의 의식과 무의식에 자리하며 현실에서 영향을 미친다. 시집의 문을 여는 서시에서, 우리는 그 기억의 실체에 조금 다가갈 수 있다.

“한 사람이 나무로 떠났지만

그 뒷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느 날 나무가 되어 돌아온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그때 이미 떠난 그였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떠난 그가 남긴 유품을 새벽에 깨어

천천히 만져보는 기분,

길을 돌아보면

그를 어느 나무에선가 놓친 것도 같다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일까

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한다는 것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 머물면서

이렇게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기억 저편` 전문

세상을 떠나 잊혀버린 한 사람과 그를 기억하는 또 한 사람인 `나`가 있다. 현실에 없는 `그`를 `기억`하는 `나`에게 “살아간다는 건 온 신경을 유목하는 것이”자 “그가 떠난 자리에 잠시 머물면서/ 이렇게 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기억은 한없이 무겁고 우울하다. 사라진 것을 기억하는 일이란 그리움을 감각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윤성택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담아내고 있는 `기억`의 저편에는 이렇듯 `그리움`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바람의 궤와 함께 이어지는 색감에서

사위를 움켜쥔 채 회전하는 윤곽,

신화의 조난 같은 새벽이 다가오는 사이

빛은 여러 개의 가설을 파먹는다

가지마다 행성을 밝히는 액정들

지금도 불 밝은 몇몇 접속자들

후둑 떨어지는 홍시의 여정을 귀에 들려주면

불면의 시공간이 채집된다

녹슨 자전거 바퀴 속을 항해하는 먼지들은

이제 외계의 답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아득히 계통에 없는 유기물로 스며든 후

나선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을 때

감나무에서 붉어지는 봉문이 있다

핏빛 중력이 서서히 끌어당기던 언 땅 밑 항로를 가다보면

나직이 어느 불행과 조우할 수 있을까

새벽녘 얼굴만 비추는 액정에는

파리한 안색이 걸려 있거나 주술처럼 손톱이 부딪쳐온다

별들이 지독한 건 제 빛을 보내

그 눈빛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붉은 탯줄에 매달려 양육되고

고인은 외장 하드에 검은 시신경을 연결한다

희뿌연 배경 붉은 화소의 감나무는

광속의 주파수를 따라

운명은 다만 서로 돌아다보는 거라고

나뭇가지 갈래로 뻗어가고 있다

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감(感)에 관한 사담들` 전문

표제작 `감(感)에 관한 사담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 중력의 법칙대로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공중의 전파체로 바뀌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이제 우리의 감각은 브라운관이나 액정화면을 읽어내는 눈만 남은 것은 아닌지(“감과 감의 경계는 응시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이 시집이 시종 기억과 그리움 사이에서 우울하게 부유하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 시인 윤성택

“밤하늘 속 탐사선이 가없이 떠가는 상상

베개에 눌린 안구 안쪽에서 폭풍이 일고

깊이 묻혀 있던 유적이 드러난다

보이저2호에서 판독불능의 신호가 보내지면

어느 꿈이 황금음반을 틀어주고 있다는 생각

탐사선이 태양계 끝에 가 있는 것은

방안에 떠 있는 어떤 입자 속 제국에

내가 기류하고 있다는 것, 비 오는 밤

막막한 공간에 음악이 퍼지면

몇백억 킬로미터 밖 동체가 느껴진다

나는, 이 우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서 온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기류(寄留)` 전문

꿈의 생생한 체감을 아름답게 묘사한 이 마지막 시에서, 일종의 유체이탈(“몇백억 킬로미터 밖 동체가 느껴진다”)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분열 상태에 놓인 시적 자아는 황금음반이 들려주는 우주의 음악 속에 몸을 띄운다. 잊힌 기억의 유적을 더듬는 막막한 그리움을, 시인은 그렇게 이 세계에 기류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고 황금음반의 음악을 들으며 견디고 있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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