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의 초호화 보금자리 `터키의 베르사이유`

▲ 돌마바흐체 궁전 입구

■ 돌마바흐체 궁전

탁심 광장 근처 낡은 호텔에 짐을 맡긴 난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향했다. `돌마바흐체(Dolmabahce Sarayi)` 궁전에 도착해 표를 끊고 들어가려는데 패키지로 온 우리 나라 사람들이 앞에 서 있다. 8일 패키지로 터키 이스탄불, 그리스 아테네 즉 핵심적인 곳을 본단다. 여대생 세 명도 내 뒤에 서 있다. 그들은 배낭여행 중이란다. 40일 일정 여행인데 생각보다 지출이 크다고 걱정을 한다. 이미 이집트를 여행했단다.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돌마바흐체 궁전 입구

“이집트에선 입장료를 빼고 모든 값을 반으로 깎아야 해요. 기념품을 반값에 샀는데 다른 데서 더 싸게 파는 거 있죠. 속았다는 생각에 얼마나 화가 나던지.”

묻지도 않았는데 덧붙인다.

“책에 소개한 도미토리를 찾으려고 하는데 그곳은 망해서 없다는 거예요. 찾아가보니 엄연히 있는데 말이죠. … 택시는 타기 전에 꼭 흥정하고 타세요. 참 이집트 입장료가 비싼 편이에요.”

시각은 10시40분이다. 표 끊는 곳에선 세람르크만 입장하는 티켓, 하렘만 입장할 수 있는 티켓. 그리고 세람르크와 하렘 두곳을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을 발권한다. 하지만 입장은 현지 해설가의 안내에 따르기 때문에 단체로 입장해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안내문을 읽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티켓을 끊어야 한다. 그것 역시 플래시를 터뜨려서는 안 된다.

▲ 돌마바흐체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의 궁전을 모델로 지었다. 31대째의 술탄 압둘 마지드 1세의 명에 따라 1843년 착공해 1859년 완공했다. 이 궁전은 토프카프 궁전이 협소하기 때문에 지은 궁전이다. 토프카프 궁전보다 후일 지었기 때문에 더 우아하고 아름답다. 세람르크(Selamik)는 남성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놓인 가구 하나, 벽면에 걸린 그림 한 점, 그 모든 것들이 최상이다. 들어가면서 술탄만 다닐 수 있는 입구 문짝 위 멋진 문양을 본다. 문양이 금으로 입혀 있다. 오스만 제국 시절 각국에서 보내온 전시품을 보노라면 그 정교함과 예술성에 놀라게 된다.

`계단의 방`으로 오르는 손잡이 받침대는 베네치아 산 크리스털이다. 곳곳 넓은 홀에는 멋진 샹들리에가 걸려 있다.

초를 꽂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샹들리에 중 단연 인기를 끄는 것은 `황제의 방`에 있는 것이다. 황제의 방에 걸린 샹들리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보낸 것으로 그 무게만 4.5t이다. 36m 높이의 천정 돔에서 카펫 가까이 즉 바닥에서 2m 정도 내려진 샹들리에를 보면 그만 입이 벌어진다. 촛대가 770개란다.

돔에 그려진 그림 또 환상적이다. 돔을 올려보면 마치 구름 위에 내가 있는 착각에 젖게 된다. 이곳에서 술탄의 대관식을 거행했다. 통로를 이동하다 보면 동서남북을 가늠하기 어렵다. 어느 쪽이 동쪽이더라. 하여튼 만나게 되는 카펫, 의자, 장식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서재, 침실, 수세식 화장실 등을 둘러보고 12시쯤 밖으로 나갔다. 문 밖으로 나서자 보스포루스 해협의 아름다운 물결이 출렁인다. 이만큼 돌마바흐체 궁전은 아름답게 꾸며졌다.

▲ 황제의 방에 걸린 샹들리에

■ 돌마바흐체 궁전의 하렘

돌마바흐체 궁전의 하렘은 12시 15분에 입장 가능하다고 쓰여 있다. 패키지 여행자들은 이곳을 찾지 않은 것 같았다. 15분이 돼 입구로 갔다. 어디서들 왔는지 꽤 많은 인원이 줄을 선다.

하렘은 왕실의 가정이다. 오스만 시대 후기 6명의 술탄이 이 곳을 이용했다. 공화제가 된 후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도 이 곳을 관저로 사용했다. 그는 1938년 11월 10일 집무 중 이곳에서 사망했다.

▲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 침실

그가 사용하던 침실은 터키 국기로 덮여 있다. 또 한 가지 그가 사망한 시각이 오전 9시5분임을 상징하듯 그의 집무실과 침실에 있는 시계는 오늘도 오전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다. 응접실에 놓인 벽난로, 의자, 테이블 등 모든 집기가 고급스러웠다. 이곳 역시 목욕탕과 화장실을 구경하게 했다. 세람르크와 구조는 비슷했다. 하렘을 구경하고 나오니 오후 1시 20분이다.

▲ 토프카프 성채

■ 토프카프 성채와 지하궁전

트램을 타고 토프카프 성채를 구경한 후 지하궁전으로 가기로 했다. 트램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탔다. 토프카프 역에 도착해 성채 옆을 걸었다. 꽤 길었다. 성채는 낡고 그 안쪽으로 빈민가 같은 허름한 집들도 보였다. 오래되었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혼자 카메라를 들고 골목에 들어설 때는 조금 두렵기까지 했다. 후미진 곳은 역시 빈민촌이다. 삶의 가난은 어디든 비슷하다. 그곳에서 다시 빠져나와 트램을 타고 지하궁전으로 갔다.

지하 궁전의 크기는 세로 140m, 가로 70m, 높이 8m 정도다. 지하 궁전은 치산치수(治山治水)의 한 단면을 볼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부터 시작하여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 532년에 만들어진 저수조로 발렌스 수도교에서 물을 끌어와 이곳에 저장했다.

표를 끊고 들어가면 우선 천정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기둥을 보게 된다.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기둥의 수는 세로 28줄, 가로 12줄로 총 336개였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90개가 파손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통로를 따라 걷다보면 묘한 기분을 갖게 된다. 좌우로 도열한 기둥이 불쑥 손을 내밀 것 같은 느낌이다. 끄트머리 기둥 아래에서 뱀의 머리를 하고 눈을 부릅뜬 `메두사의 얼굴` 2개를 만나게 된다.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다. 많은 관광객이 메두사의 얼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데, 사진을 찍을 때마다 천정에서 메두사의 침방울 같은 물방울이 뚝! 떨어져 관광객의 이마를 적신다.

▲ 그랜드 바자르

■ 그랜드 바자르

지하 궁전을 나온 난 그랜드 바자르로 향했다.

바자르는 이슬람권에서 시장 즉 마켓 또는 재래시장을 의미한다. 그랜드 바자르나, 이집트 바자르를 간다고 해도 특별히 살 것은 없었다. 그저 관광객으로서 그냥 둘러보는 것이다.

그야말로 `윈도우 쇼핑`이다. 둘러보다 인연에 닿아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살 수도 있다. 우선 입구에서 좌측 서점 골목으로 들어갔다. 누구보다 책 욕심이 많은 내 자신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외국에 갔다 올 적마다 읽지도 못하는 그 나라 책을 몇 권 기념으로 사온 나였다. 지금은 책꽂이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책을 말이다. 터키를 제목으로 단 책을 넘겨본다. 두껍고 값도 비싸다. 서점가 옆 옷과 가방, 신발 등 일상 용품을 파는 골목은 얼마나 붐비는지 소매치기 걱정을 해야 할 정도다.

물건을 파는 많은 상인의 손에 찻잔이 들려있다. 차를 배달하는 사람도 보인다. 그들의 일상에 차는 그야말로 다반사다. 그런 풍경을 보며 미로처럼 뚫린 안쪽으로 들어갔다. 카펫 가게, 골동품 센터. 도자기 상점, 없는 게 없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싸요.”

“감사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 나를 보고 우리말로 사람을 끌어당기려 한다. 숄(shawl. 스카프, 머풀러, 목도리)을 파는 가게가 눈에 띈다. 관심을 갖고 쳐다보자 득달같이 점원이 쫓아온다.

그랜드 바자르는 터키어로 `카파르 차르스`라고 하는데 지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을 갖고 있다. 5천여 개의 점포가 입주해 있으며, 시장의 출발은 15세기 중반 마호메트 2세에 의해 건설된 이치 베데스텐, 산달 베데스테니라는 2개의 시장이다. 실크로드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이 곳 이치 베데스텐은 금, 은, 보석을 취급하였고, 산달 베데스테니는 주로 비단, 견 등의 옷감 종류를 취급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중동의 어느 시장보다 큰 시장으로 알려졌으며 이스탄불을 찾는 관광객은 으레 한번 발을 들여놓는 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가장 큰 길이라 할 수 있는 `쿠윰줄라르`거리 양옆은 금은보석 가계가 금목걸이를 연결하듯 통로 양 옆에 이어져 있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내려가면 `이집트 바자르`에 닿게 된다. 이곳 역시 여행자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여러 가지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이집트`란 이국적 명칭이 시장의 느낌을 새롭게 한다. 옛날 이집트에서 보내온 공물을 이곳에서 취급한데서 이 시장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식료품과 일상용품을 취급하는 시장이란 뜻으로 `스파이스 바자르(향신료 가게)`란 명칭도 갖고 있다. 이 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다양한 열매와 그것을 갈아놓은 향신료에 반하게 된다.

우리나라 한약국 악재상자에 넣어놓은 한약재료 같은 열매, 나무, 그것을 갈아놓은 가루들이 색색깔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것뿐이 아니다. 햄, 치즈를 비롯하여 생선류까지 팔고 있는데 그 종류 또한 몇 십 가지는 된다. 대부분 물건을 무게 단위로 판다.

이집트 바자르를 구경한 난 근처 찻집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지난 기록을 훑어본다. 고된 일정이었지만 많은 것들이 흥겹게 한다. 아름다움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란 것을 여행지에서 깨닫는다.

그러면서 난 다음 여행지를 떠올린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