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 특수부대 `네이비 씰`의 전설적인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일대기를 그렸다. 이라크 전쟁에 참전해 200명이 넘는 적군을 저격 사살한 그는 미군 역사상 최고의 스나이퍼다.
스코프에 포착된 표적 중에는 자살폭탄을 매달고 아군을 향해 뛰어드는 어린 아이와 여성도 있다. 그의 총알이 표적의 이마와 심장을 관통하는 순간, 방금 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한 인간의 육체, 생각, 기억, 꿈, 사랑, 전 생애가 피 흘리며 흙바닥에 뒹구는 시체로 변한다. 그걸 스코프로 지켜볼 때마다 그의 내면 역시 `죽음의 이미지`에 의해 저격당했을 것이다.
전역 후 그는 피 냄새와 총성, 죽음이 없는 일상에 적응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두 권의 자서전을 냈는데, 영웅적인 스토리가 널리 알려지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전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는 참전 병사들을 돕는 활동에도 나서며 건강한 삶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2013년, 해병대에서 저격수로 복무한 에디 루스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크리스 카일이 돕던 PTSD 환자였다. 카일의 아내는 남편이 항상 전쟁터와 전쟁터 밖 현실과 싸웠다고 말했다.
영화 `람보 - 퍼스트 블러드`에서 베트남전 용사인 람보는 함께 참전한 동료들이 극심한 PTSD를 앓다가 자살하거나 후유증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동료를 만나러 찾아간 한 작은 도시에서 그는 부랑자 취급을 받으며 시민들로부터 격리된다. 공권력에 부당한 체포와 폭력을 당하자 무기고를 탈취, 인간병기가 되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베트남전 당시 지휘관인 트라우먼 대령이 람보의 광기를 멈추고자 대화를 시도한다. “혼자서 전쟁을 계속 하려는 건가? 작전은 끝났어.”
“끝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돌아왔을 때 모든 눈들이 살인자를 보는 듯했죠. 누가 저를 보호해주죠? 모두 어디 있나요? 내 친구 램포드, 유쾌한 내 친구. 내 친구는 누구죠? 아무도 없어요. 난 친구가 필요해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요.”
생활고를 겪던 제1연평해전 용사가 편의점에서 콜라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전투 중 포탄 파편을 맞은 후유증 탓에 오른손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유공자 연금을 투자 사기로 날리고, 거액의 빚을 진 채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배가 고파 빵을 사러 갔는데 음료수 살 돈이 부족했다”고 진술했다. 그에겐 단돈 1천800원이 없었지만, 정말 부족했던 것은 국가의 예우와 사람들의 관심이다.
한국전쟁 용사 중 대부분이 극심한 생활고와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장애를 안은 채 폐지 수집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들에게 무공훈장이나 참전용사증서가 무슨 소용일까. 따뜻한 밥 한 끼로 바꿔 먹을 수도 없는 무용지물이다. 마땅한 존경이 있어야만 명예가 명예일 수 있다. 존경 없는 명예는 한낱 멍에일 뿐이다. 명예에 합당한 존경, 성의를 다한 예우, 실질적 지원과 보상이 영웅들에게 필요하다. 군인을 `군바리`라고 비하하는 대중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군인, 소방관, 경찰 등 `제복에 대한 존경`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내 일상의 행복과 소중한 꿈들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다. 그 희생이 사라지는 순간,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땅 밑 캄캄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 카일의 실제 장례식 영상을 보여준다.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미식축구 슈퍼볼과 팝 스타들의 공연이 열리는 댈러스 카우보이 스타디움에서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운구차가 도로로 나서자 수만 명 시민들이 성조기를 흔들며 영웅을 추모했다. 자신들을 위해 고통 속에서 삶 전체를 희생한 이에게, 단 몇 분이나마 평온한 하루의 일부를 내어주며 존경과 감사를 보냈다. 이제 우리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