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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淸覽)

可泉 기자
등록일 2009-10-07 19:46 게재일 2009-10-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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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예술촌장 김원길 시인이 시집을 보내 왔다. 제목을 `아내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한다`로 붙인 한영일(韓英日) 대역시집이다. 고택에 온 손님들 중에서 캐나다인 학자가 영어로 번역하고 일본인 번역가가 일어로 번역하여 원문인 한글과 함께 낸 의미있는 시집이다.

원래 그의 맑은 시들을 사랑해 왔는데, 이렇게 시선집을 보내 오니 더욱 반갑고 고맙다.

시집의 첫 페이지에 시인은 “김윤규 교수 淸覽”이라고 고졸한 붓글씨를 써 보냈다. 청람, 맑은 마음으로 읽으라는 뜻일 것이다. 아름다운 표현이다. 그의 시들과 함께 참으로 맑은 물같은 말이다.

가끔 남의 책을 받으면 여러 가지 증정사가 보인다. 가장 흔한 것이 “혜존(惠存)”, “혜감(惠鑑)”, “혜람(惠覽)”, “청안(淸案)”, “안하(案下)” 등이다. 은혜로이 받아 주십시오, 은혜로이 살펴 주십시오, 맑은 책상 아래 바칩니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떤 말은 좀 너무 높인 듯해서 미안하기도 하지만 책을 내는 이의 노고를 생각하고 감사히 받는다.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은 다 좋은 뜻인데, 문제는 이런 말들이 다 한자말이라는 것이다. 한자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복잡한 획수를 다 적기도 어렵다.

혹시 다 갖추어 적어 놓아도, 한자라는 것이 익숙하게 쓰지 않으면 조잡해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각고의 노력으로 출판한 책을 받고서도 획이 빠지거나 이상하게 그어져 있으면 어이없어서 존경심이 약간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한자말은 억지로 쓸 것이 아니다. 지난날 쓰던 복잡한 한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현실적 역할을 잃고 있다. 그런데 억지로라도 한자로 써야 고급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한글이 일반화되고 사용이 다양해지면서, 실은 한글로 쓰는 것이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한글이 본래 우리말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더 정성껏 써 나가면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마음을 담은 좋은 표현을 자꾸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可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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