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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예산으로 부부 동반 해외 출장 다녀왔다…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재임 중(2022년 5월~2026년 6월) 다녀온 3번의 해외 출장에서 선관위 예산으로 매번 배우자를 동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배우자의 항공비와 숙박비 등을 선관위 예산으로 지불했으며 공개 문서엔 부부 동반 관련 내용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출된 내역에는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운임과 현지 교통비, 식비·숙박비 등 체재비 등이 포함돼 있다. 17일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해외선거관리기관 교류·협력방안 협의 등을 위한 국외출장 계획’에 따르면 노 전 위원장은 배우자와 함께 2022년 12월 2~10일 ‘선거 정치제도 의견수렴 및 재외선거 평가’ 명목으로 호주 시드니·캔버라와 뉴질랜드 웰링턴·오클랜드를 다녀왔다. 2024년 11월 7박 9일 일정으로 독일 및 에스토니아를 방문했다. 당시 출장엔 약 7194만원이 소요됐다. 항공료, 철도운임, 체재비, 준비금 등 모두 선관위 예산이 쓰인 것으로 보고됐다. 또 노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8박 10일로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스톡홀름을 찾았다. 출장에 든 약 9053만원이 선관위 예산으로 지불됐다. 그런데 이 같은 세 차례 해외 출장에서 배우자가 동행했다는 내용은 선관위가 사후 발표한 외부 공개 문서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 측은 “헌법기관장 예우를 고려해 예산 편성 때부터 배우자 예산을 편성하는 관례에 따랐다”며 “배우자는 공무원이 아니라서 사후 보고서에는 포함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2026-06-18

“60일 지나면 호르무즈 통행료 받나” 새로운 논란 불거져...미-이란 종전 MOU 공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체제의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의 종전 협상을 위한 14개 조항의 양해각서(MOU) 전문을 공개했다. 블룸버그 통신 등 언론이 MOU 초안을 입수해 공개한 적이 있지만, 트럼프 정부가 합의한 MOU 전문을 직접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1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17일(현지시간) 전화 브리핑을 통해 미국과 이란이 합의한 MOU 전문을 공개했다. 전문에는 군사 충돌 종식과 핵 프로그램 동결, 대이란 제재 해제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합의문에 호르무즈 해협 통항 보장 기간을 60일로 제한한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로운 논란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합의문에 “이란은 60일 동안 수수료 부과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들의 양방향 자유 통항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민간 통항은 즉시 회복될 것“이라고 돼 있다. 또 “이란은 30일 이내에 기뢰 제거 및 다른 기술적·군사적 조처를 완료하며, 향후 관리 및 해양 서비스에 대해 오만 및 걸프국들과 협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통행료 없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은 60일로 한정하고, 그 이후에는 관리 및 해양 서비스를 명목으로 한 통행료 성격의 요금 부과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과 이란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을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중단하고 상호 위협과 무력 사용을 자제하기로 했다. 양국은 최대 60일 안에 최종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에도 착수한다고 돼 있다. 연합뉴스는 또 MOU 제6조에 “미국은 지역 파트너들과 협력해 최소 3000억달러(약 465조3000억원) 규모의 최종적이고 상호 합의된 이란 재건 및 경제 발전 계획을 개발할 것“이라고 명시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계획의 이행 메커니즘은 60일 내에 완료되며 미국은 관련 금융 거래를 위한 모든 허가 및 면제를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6-06-18

예상대로 금리 동결한 美연준, 연내 인상 가능성 시사…韓과 1.25%p 차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하고 금리를 3.50%~3.75%로 동결했다. 신임 케빈 워시 의장 체제하에 개최한 첫 FOMC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연준은 작년 9월, 10월, 12월에 0.25%포인트(P)씩 3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내리다 올해 들어 1월, 3월, 4월에 이어 네 번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하지만 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은 3개월 전보다 한층 매파적으로 변했다. 18명의 위원 중 절반인 9명이 올해 안에 최소 한 차례 이상의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했고 8명은 동결을 전망했다. 금리 인하를 예상한 위원은 단 1명에 그쳤다. 연내 한차례 금리 인상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준의 이번 동결로 한국(2.50%)과 미국의 금리 차는 상단 기준으로 1.25%p를 유지하게 됐다. 연준은 성명에서 “인플레이션은 위원회의 2% 목표치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부분적으로 에너지 등 특정 분야의 가격 상승이 초래한 공급 충격이 반영된 결과“라며 “위원회는 물가 안정을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준의 성명은 평소보다 절반 이하로 짧아졌다. ‘연준이 말이 많아서는 안된다‘는 케빈 워시 신임 의장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026-06-18

대구보건대, 대구시 9개 구·군 통합돌봄 역량강화 교육 운영

대구보건대학교 DHC통합돌봄지원센터가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과 함께 대구지역 9개 구·군을 대상으로 통합돌봄 역량강화 교육을 실시한다. DHC통합돌봄지원센터는 오는 7월 22일까지 대구지역 9개 구·군을 순회하며 ‘2026년 구·군별 통합돌봄 역량강화 교육’을 운영한다. 이번 교육은 올해 시행된 돌봄통합지원법에 대응해 현장 종사자들의 정책 이해도를 높이고 사례관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교육은 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되며, 구·군 담당 공무원과 민간 제공기관 종사자 등 340여 명이 참여한다. 교육 과정은 △통합돌봄 정책 및 지침 이해 △통합돌봄 대상자 이해와 사례관리 실무 △지역별 특화사업 안내 등으로 구성됐다. 참가자들은 지역 특성에 맞는 서비스 연계 방안과 현장 적용 사례를 공유하며 통합돌봄 실무 역량을 높일 예정이다. 특히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에 따라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돌봄 체계 구축이 중요해진 가운데, 이번 교육은 공공과 민간의 협력 기반을 강화하고 현장 대응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상훈 DHC통합돌봄지원센터장(사회복지학과 교수)은 “통합돌봄 정책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현장 종사자들의 정책 이해와 사례관리 역량을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번 교육이 지역 여건에 맞는 통합돌봄 서비스 제공 기반을 다지고 현장 중심의 돌봄체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6-06-18

경북대·KAIST 공동연구팀, 레이저 구조화 전극 설계 제시

경북대학교와 KAIST 공동연구팀이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사용되는 리튬이온전지의 충·방전 성능과 수명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전극 설계 기술을 개발했다. 경북대 스마트모빌리티공학과 오지민 교수팀과 KAIST 신소재공학과 홍승범 교수팀은 니켈·코발트·망간(NCM) 양극의 성능 저하 원인을 분석하고, 레이저 표면 구조화 기술과 전극 압착 공정을 결합한 새로운 전극 제조 전략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NCM 양극은 높은 에너지밀도로 전기차 주행거리 향상에 유리하지만, 배터리 용량 증대를 위해 전극을 강하게 압착할 경우 내부 공간이 줄어들어 리튬 이온 이동이 제한되고 내부 저항이 증가하는 문제가 있다. 이로 인해 출력과 수명이 저하되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기존 압착 공정에 정밀 레이저 표면 구조화 기술을 적용해 전극 표면에 주기적인 미세 구조를 형성했다. 이를 통해 리튬 이온 이동 경로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전해질 침투성을 높여 성능 저하 문제를 해결했다. 연구 결과, 최적화된 레이저 구조를 적용한 전극은 기존 압착 전극보다 계면 저항 증가를 약 56% 억제했으며, 고속 충·방전 환경에서도 우수한 용량 유지 특성을 보였다. 또한 충·방전 과정에서 형성되는 계면층(CEI)의 안정성이 향상되면서 니켈 용출이 약 3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전기화학 변형 현미경(ESM)을 활용해 리튬 이온 이동 거동을 나노미터 수준에서 분석했다. 그 결과 레이저 구조화 전극은 기존 전극보다 리튬 이온 이동 특성이 2.3배 이상 향상됐고, 전극 내부 이온 이동의 불균일성은 약 50%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표면 화학종 분석(XPS)을 통해 리튬 이온 전도성이 우수한 불화리튬(LiF) 기반 보호층이 안정적으로 형성됨을 확인했으며, 엑스선 회절 분석(XRD)에서는 반복 충·방전 이후에도 결정 구조 변화가 효과적으로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지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전극 제조 공정을 단순 생산 단계가 아닌 전지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설계 변수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레이저 표면 구조화를 통해 고에너지밀도 전지의 수명과 출력 특성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와 드론, 로봇, ESS 등 차세대 모빌리티 및 에너지 산업 전반에서 고성능 리튬전지 개발을 위한 핵심 제조 기술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NRF)과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화학공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케미컬 엔지니어링 저널(Chemical Engineering Journal) 온라인판에 지난 3일 게재됐다. 교신저자는 오지민 교수와 홍승범 교수, 제1저자는 경북대 김진서 석사과정생과 KAIST 강채율 석사과정생이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6-06-18

전류 방향 기억하는 ‘초전도 다이오드’ 개발…양자컴퓨팅 회로 소형화 길 열려

국내 연구팀이 전원을 꺼도 전류가 흐르는 방향을 스스로 기억하고 제어하는 초전도 소자를 개발했다. POSTECH(포항공과대학교)은 친환경소재대학원·물리학과·첨단재료과학부 김지훈 교수 연구팀이 아르헨티나 Instituto Balseiro 및 CNEA-CONICET 소속 네스토르 하베르코른 교수 연구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자기장 없는 메모리 프로그램 가능 초전도 다이오드’를 개발했다고 18일 밝혔다. 초전도 다이오드는 전류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는 일방통행 장치로 양자컴퓨터와 같은 정밀한 초전도 회로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기존 소자들은 작동을 위해 복잡한 외부 자기장 장치가 필요해 회로 집적에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팀은 자석의 기억 성질을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개발된 소자는 초전도층(NbN), 절연층(AlN), 자성 금속층(퍼멀로이) 등 세 겹의 단순 평면 구조로 이뤄져 있다. 핵심은 자성 금속층이다. 자성 방향을 한 번 설정하면 외부 자기장이 없어도 상태가 유지되며 이에 따라 소자 내 전류 흐름 환경이 달라진다. 실험 결과 전류 흐름에 따라 초전도체 내 미세 자기 소용돌이인 ‘보텍스(vortex)’의 움직임이 비대칭적으로 제어되면서 다이오드 효과가 나타났다. 특정 방향으로는 전류가 저항 없이 잘 흐르고 반대 방향으로는 저항이 발생하는 원리다. 이 소자는 자성층의 방향을 바꾸면 전류 방향도 뒤집히는 메모리 기능을 갖췄으며 최대 40%의 높은 정류 효율을 확인했다. 김지훈 교수는 “단순한 재료 조합만으로 고효율 초전도 다이오드를 구현했다”며 “향후 양자컴퓨팅 회로와 극저온 초전도 전자소자에서 전류 방향을 제어하는 핵심 부품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됐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6-18

대구한의대, 한의약 해외교육·연수 지원사업 7년 연속 선정

글로컬대학 대구한의대학교가 보건복지부와 한국한의약진흥원이 주관하는 ‘2026년 한의약 해외진출 및 외국인 환자유치 지원사업’의 세부사업인 ‘한의약 해외 교육·연수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이로써 대구한의대는 2019년 이후 7년 연속 국책사업 수행기관으로 이름을 올렸다. 대구한의대는 이번 사업 선정으로 올해 약 8000만 원의 국비를 지원받아 우즈베키스탄, 몽골, 튀르키예, 베트남, 태국, 슬로베니아 등 해외 협력대학을 대상으로 한의약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글로벌 한의약 전문인력 양성에 나선다. 대학은 2020년부터 러시아 태평양국립의과대학을 시작으로 우즈베키스탄, 몽골, 베트남, 러시아, 튀르키예, 프랑스, 벨기에 등 13개 해외 기관과 교육 협력체계를 구축해 왔다. 그동안 100여 건의 교육·임상연수 콘텐츠를 개발하고 800여 명의 해외 학생과 의료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등 한의약 국제화 기반을 확대해 왔다. 특히 2024년부터는 튀르키예 리젭타입에르도안대학교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몽골, 태국 등 5개 기관과 전공과목 개설 협약을 체결하고, 5개 한의약 전공과목을 정규 교과과정으로 운영해 학점 인정 성과를 거뒀다. 올해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국립의과대학·부하라국립의과대학·안디잔국립의과대학, 몽골약학대학·몽골민족대학·이크자삭대학, 튀르키예 리젭타입에르도안대학교·아타튀르크대학교, 태국 듀라키지푼딧대학교 등 기존 협력기관과의 교육과정을 지속 운영한다. 또 베트남 호치민보건과학대학교, 몽골국립의과대학, 슬로베니아 루블라냐대학교 등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해 유럽권 한의약 교육 거점 구축에도 나설 계획이다. 대학은 국가별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맞춤형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한의과대학 전문교원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강의를 병행해 15시간 이상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은 해당 대학의 정규 학점으로 인정받게 된다. 송지청 한의약 해외교육사업 책임교수는 “7년 연속 사업 선정은 대구한의대가 구축해 온 글로벌 한의약 교육 역량을 인정받은 결과”라며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한의약 교육 네트워크를 확대해 글로벌 K-MEDI 교육모델 확산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6-06-18

신규원전 영덕 결정 ‘3대 이유’…압도적 찬성+공기 단축 가능+추가 건설 여력

신규 원전 건설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17일 회의에서 현행 중장기 전력 수급 계획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반영된 신규 대형 원전 2기를 지을 후보지로 영덕군을 선정했다. 영덕군의 염원대로 후보지가 된 것이다. 작년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에는 2037년과 2038년 도입을 목표로 1.4GW(기가와트)급 원전 2기를 짓는 계획이 반영됐다. 0.7GW급 소형모듈원자로(SMR)를 2035∼2036년 도입을 목표로 건설하는 계획도 담겼다. SMR 후보지에는 경주 대신 부산 기장군이 선정됐다. ◇영덕에 오지 않을 수 있었던 원전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에는 원전 건설 계획이 없어 영덕군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을 뻔했다. 새 정부가 원전 건설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전 지을 데가 없다“면서 “당장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데, 원전은 지어서 가동하는데 최소 15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글로벌 AI시대를 맞아 전력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공장을 증설하고, 데이터센터를 지으려고 해도 전력 부족이 우려된다는 보고서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는 ‘공론화‘라는 명목으로 신규 원전을 건설할지 논의하는 두 차례 토론회와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이 여론조사에서 계획대로 원전을 짓자는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자 지난 1월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확정했다. ◇원전 추가 건설 계획 확정 이후는 ‘사실상 영덕’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확보할 현실적인 방안이 ‘원전 확충‘뿐이라고 판단하고 토론회와 여론조사로 명분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신규 대형 원전을 짓기로 하면서 사실상 후보지는 영덕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전력 확보는 건설 공기를 얼마나 당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데 영덕은 속도전이 가능한 유일한 곳이었다. 이 대통령도 더는 원전을 지을 곳이 없다는 점을 강조할 때도 “딱 한 곳 있다. 지으려다가 그만 둔 곳“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영덕군을 지칭한 것이었다. 영덕군 후보지는 이명박 정부 때 천지원전 1호기와 2호기(각각 1.5GW)를 건설할 예정지로 고시되고 이에 따라 한수원이 부지 19% 정도를 사들이기까지 한 지역이다. 당시 원전 건설을 위한 지질 조사와 환경영향평가도 상당 부분 진행됐다. 11차 전기본은 대형 원전 건설 기간을 13년 11개월로 상정하고 있다. 부지를 공모한 뒤 평가해 선정하는 기간을 포함한 것이다. 영덕에서는 이 기간이 생략되거나 최소화할 수 있어 실제 원전을 건설하는 기간은 7∼8년 안팎으로 당길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5년 안팎이면 건설 가능하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부가 영덕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주민들의 압도적 찬성이 큰 역할 주민들의 압도적 찬성도 큰 몫을 차지했다. 영덕군민들은 지난해 3월 대형산불로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경제적 피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상태에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것에 주민들은 찬성표를 던졌다. 일자리도 크게 늘어나고 향후 인구 유입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점도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시킨 요인이 됐다. 현재 진행 중인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 사업의 경우 8년의 기간 동안 누적으로 약 720만명의 인력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신한울 3·4호기 건설부터 운영까지 60년 기준 지역에 주어지는 법정지원금은 2조1천541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지역에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효과다. ◇추가로 영덕에 더 지어질 수 있어 영덕군이 제시한 부지의 경우 이번 원전 건설에 필요한 면적(104만㎡)의 3배 정도여서 추후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기 쉽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제12차 전기본 수립 총괄위원회는 지난 4월 2040년 연중 최대 전력 수요가 최고 138.2GW(수요 관리책을 반영한 목표수요 기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11차 전기본에 반영된 2038년 최대 전력 수요 전망치는 129.3GW로 이를 고려하면 2040년께 필요한 전력이 약 8.9GW 늘어난 것이다. 이를 원전으로 충족한다면 2∼6기가 더 필요하다. 전망치가 늘어난 것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 수요가 반영돼서다. 한국원자력학회와 대한전기학회,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는 최근 ‘12차 전기본 정책 제언‘에서 탄소중립 목표 연도인 2050년 전체 발전량 가운데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35%로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대형 원전 20기와 SMR 12기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전 비중을 50%로 높인다면 대형 원전 34기와 SMR 20기가 추가로 있어야 한다고 했다.

2026-06-18

트럼프 “최종 합의 아니다”…이란 행동 따라 공습 재개 경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체결한 전투 종결 양해각서(MOU)가 최종 합의가 아니라고 밝히며, 이란의 태도에 따라 군사행동을 재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참석 중 기자들과 만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양해각서(MOU)일 뿐”이라며 “합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란이 제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다시 공격하고 폭탄을 투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합의에 대한 즉각적인 대이란 제재 해제 조치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종전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미국이 대이란 압박 수단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협상을 통해 마련된 합의 틀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매우 강력한 합의”라며 “아직 아무도 세부 내용을 알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금융시장의 반응을 거론하며 “시장만큼 똑똑한 것은 없다”며 “시장은 이번 합의를 매우 환영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계 경제가 공황 상태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국제유가 전망과 관련해 “유가는 전쟁 이전보다 더 낮아질 수도 있다”고 말해 중동 지정학적 위험 완화에 따른 추가 하락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번 발언은 미국과 이란이 전투 종결 MOU를 체결한 이후에도 양측 간 긴장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재폭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향후 본협상 과정과 이란의 이행 여부가 중동 정세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김진홍기자 kjh25@kbmaeil.com

2026-06-17

“경주가 왜 탈락했나”…SMR 부산에 뺏기자 시민들 허탈감·실망감 확산

SMR(소형모듈원전) 후보부지 선정에서 경주시가 부산 기장군에 밀려 탈락하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허탈하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한 시민은 “수십 년간 원전과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을 감내하며 국가 에너지 정책에 협조해 온 경주가 정작 미래 원전 사업에서는 제외된 것이 안타깝다”며 “그동안의 기여와 축적된 인프라가 제대로 평가받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경주가 원자력 산업의 중심도시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결과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며 “평가 과정과 배점 기준을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상인들은 “SMR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했던 만큼 실망감이 크다”며 “이번 탈락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할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전했다. 일부 시민들은 “경주시와 관계기관이 이번 결과를 냉정하게 분석해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 향후 국가 핵심사업 유치에서는 같은 아쉬움이 반복되지 않도록 보다 치밀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2026-06-17

초여름 영덕, 풍요를 고민하며

나는 요즘 매주 어려운 고민에 빠진다. 곧 두 돌이 되는 아들과 한 주 내내 직장생활 하느라 고생했을 아내와 함께 어디서 어떻게 주말을 보낼까. 휴대폰을 쥐고 포털사이트를 검색하거나 SNS를 뒤지고, AI까지 동원하여 갈 만한 곳을 찾아보지만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아기 키우는 친구들이 여럿 모여 있는 단체 톡 방에 솔깃한 제안이 올라왔다. 그들 중 몇몇이 몇 년 째 러닝을 즐기고 있는데,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에 열리는 영덕해변전국마라톤대회에 참가할 겸, 친구의 어머니가 계시는 영덕의 한적한 마을에 다 같이 놀러가자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친구에게 그 동네 참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궁금했던 참이었다. 그렇게 모두 세 가족이 영덕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친구가 찍어준 주소를 찍고 차를 달려 영덕군 읍내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창수면 인량마을에 도착했다. 탁 트인 논마다 찰랑대는 물 위로 어린 벼포기들이 싱그럽게 고개를 든, 푸르고 예쁜 마을이었다. 논가에 난 가지런한 길 위에는 고즈넉한 고택들이 웅장하면서도 다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 사이 어디쯤 친구 어머님의 집도 소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지붕과 기와는 옛 집의 것을 그대로 살려둔 채 요즘 자재들로 보강하여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한 예쁜 집이었다. 앞마당에는 갖가지 꽃들이 귀엽게 피어 있었고 뒷마당 작은 텃밭에는 농약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쌈 채소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다른 지역 출신인 어머니는 근처에 정착한 가족을 따라 여기에 내려와서 벌써 9년 째 지내고 계신다고 했다. 원래는 귀신이 나온대도 이상하지 않을 흉가를 리모델링하여 이렇게 멋진 집을 가질 수 있게 되셨다고. 먼저 도착한 친구들은 저마다 데크에서 햇빛을 쬐며 책을 읽거나 주전부리를 먹으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친구들의 딸들도 마당에서 놀거리를 찾아 벌써 뛰놀고 있었다. 나도 처마 밑 그늘에 자리를 잡고, 어머님께서 내어주신 삶은 골뱅이와 간장게장을 두고 지역 막걸리를 따서 벌컥벌컥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시원한 물을 받아놓은 조립식 간이수영장에서 누나들과 함께 물장구를 치는 아들도 나 못지않게 즐거워보였다. 아내도 그런 아들의 사진을 연신 찍어대며 덩달아 신이 났다. 안주를 비우자 뒷마당에서 딴 앵두 한 접시가 나왔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붉은빛과 노란 빛이 도는 앵두를 하나씩 오물거리고 있노라니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디오니소스는 풍요를 관장하기도 한다는데, 풍요라.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을 위해서인 셈인데, 뭔가 디오니소스의 풍요라는 것은 우리가 도시에서 좇던 그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풍요에 대해 고민했다. 그것은 어떻게 풍요로워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내가 도시에서 떠올리던 풍요는 비싼 땅 위에 높은 건물을 짓고 빛나는 자동차를 타는 종류의 것인데 눈앞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풍요가 펼쳐지고 있었다. 푸르게 펼쳐진 논을 배경으로 물장구치는 아이들과 아무런 고민도 없이 저마다 앉아 멍하니 늘어진 친구들. 졸려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기울고 있던 태양. 고기가 익고 가자미조림이 끓는 냄새. 이것은 도시의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그래도 분명히 풍요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풍요가 있는데 나는 정작 어떤 풍요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은 채 어떻게 풍요로워질 것인가에 대해서만 골몰했던 것이 아닐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바다로 향했다. 아이들과 바닷가에서 모래와 조약돌을 가지고 노는 동안 친구들은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잘 뛰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은 참 좋았다고 말했다. 나는 기록이 잘 나왔느냐고 물은 것이었는데 친구들은 그 따위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바다를 보며 뛰는 것이 참 좋았다고만 이야기했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나는 아직 가지지 못한 미래의 것들, 그러니까 앞으로 사게 될 집이나 앞으로 벌게 될 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산다. 아니면 이미 지나간 일들에 대한 추억이나 원망을 늘어놓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틀 동안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 눈앞에 있는 풍경을 이야기하고 지금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지금의 기분에 충실했을 뿐이다. 마냥 신나게 놀던 아이들처럼. /강백수 (시인)

2026-06-17

여름 우유

며칠 전 방문한 카페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물건을 발견했다. 우유가 가득 든 녹색 플라스틱 박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우유 박스를 교실까지 들고 올라와야 하는 우유 당번들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우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미지근한 온도의 우유도, 우유를 마시고 난 뒤 입안이 텁텁해지는 것도 싫었다. 아니, 사실 내가 우유를 좋아하지 않았던 데에는 아홉 살 무렵 교실에서 일어난 ‘우유 테러 사건’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학교에서 나눠준 물건을 꼼꼼히 챙겨 책가방에 넣어두고는 정작 집에 와서는 잘 꺼내보지 않는 아이였다. 부모님 사인을 받아야 하는 가정 통신문이나 땀 냄새가 밴 체육복 같은 것들을 가방 안에 며칠씩 잠재워두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 벌어진 ‘우유 테러 사건’의 범인에게 고의성이 없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건은 점심시간 전 수업 때 일어났다. 오래전 일임에도 정확히 기억하는 건, 그 순간이 너무나 평화로운 장면으로 내게 남아 있어서일 것이다. 여름방학을 앞둔 오후, 한여름의 진하고 강렬한 햇빛이 쏟아졌다. 당시 나는 창가 줄 맨 뒷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몰래 졸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앞 사람의 등 뒤로 몸을 숨긴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별안간 구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코를 찌르는 강렬한 냄새에 졸음이 단번에 달아났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든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이들의 시선은 전부 칠판을 향하고 있었다. 잘못 맡았나? 그러나 착각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명확한 냄새였는데…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만 갸웃거리던 찰나, 대각선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선생님, 누가 똥 쌌어요!” 평소 장난기가 많은 개구쟁이였던지라, 선생님은 그 아이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수업 시간에 장난하면 안 된댔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앞자리 아이가 책상 옆에 걸어둔 가방에서 무언가 뚝뚝 흘러내리는 걸 발견했다. 동시에 교실 전체로 퍼지는 비릿하고 지독한 냄새. 나도 모르게 코를 움켜쥐었다. 그 아이의 앞과 옆에 앉은 아이들이 코를 틀어막으며 소리를 지르자, 가방 주인인 아이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고개만 푹 숙였다. 가방 아래는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가방을 열어 보라고 지시했다. 아이가 한참을 머뭇대기만 하자, 참다못한 선생님이 가방을 집었다. 지퍼를 열고 안을 들여다본 선생님이 깜짝 놀라 가방을 떨어뜨렸다. 활짝 열린 가방 틈으로 누런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그 액체 위에서 하얗고 통통한 구더기들을 발견했다. 구더기는 온몸을 좌우로 비틀며 꿈틀대고 있었다. 곳곳에서 비명과 헛구역질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급히 걸레를 가져와 바닥에 고인 우유를 닦은 선생님이 한 손엔 가방을, 다른 손엔 가방 주인의 손을 잡고 교실 밖을 빠져나갔다. 한참 후 돌아온 선생님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여름에는 우유가 빨리 상하니 가방 안에 두지 말고 곧장 먹도록 해라.” 그날 이후 우리 반에는 우유를 다 마신 뒤 빈 우유갑을 선생님께 확인받아야 하는 규칙이 새로 생겼다. 우유가 싫었던 나는 내심 그 아이를 원망했다. 아이들은 가방 주인에게 ‘구더기 우유’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너무 길었던 탓인지 나중에는 ‘구더기’로만 불렀다. 구더기가 된 아이는 반이 바뀌기 전까지 은근한 왕따가 되었다. 직접적인 괴롭힘은 없었으나, 모두 그 아이와 짝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가방에 또 구더기 우유가 있으면 어떡해. 누군가 꺼낸 불안이 모두를 잠식한 탓이다. 해가 바뀌기 전까지 그 아이에겐 짝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그 아이의 이름과 얼굴, 목소리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게 남은 건 ‘구더기’라는 단어 하나뿐이다. 나 역시 가방 속 물건을 꺼내놓지 않는 아이였다. 구더기 우유를 발견한 날, 나는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어 보았다. 각종 유인물과 교과서 틈에 우유 한 갑이 숨어 있었다. 언제 넣어둔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숨을 크게 내쉬며 우유를 꺼냈다. 어쩌면 나 또한 ‘구더기 우유’가 됐을지도 몰랐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나는 턱을 괸 채 직원 둘이 우유 박스를 카운터 안쪽으로 옮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햇볕이 너무 강하네.” 맞은편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친구가 말했다. 그러게, 나는 대답했다. 오늘 같은 날씨엔 너무 오래 두지 않는 게 좋겠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는 조금 남은 라테를 털어 마셨다. 고소한 우유 향이 입안에 남았다. /양수빈 (소설가)

2026-06-17

로봇 애인 시대

로봇(robot)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걷기도 하고 말도 하는 기계 장치’ 또는 ‘어떤 작업이나 조작을 자동적으로 하는 기계 장치’다. 각종 생산 현장에서 인간을 대신해 위험한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이나, 반려동물의 역할을 하며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로봇에 관한 기사는 이미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이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로봇이 생겨난 모양이다. 최근 중국 시나 파이낸스, 홍콩 성도일보 등의 외신은 ‘중국의 한 로봇 생산기업이 인간과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로봇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세칭 ‘감성 교감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보도를 종합하면 이 로봇은 인간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남성형 로봇은 키 183㎝의 늘씬한 체형으로 멋스런 정장에 날렵한 금테 안경을 쓰고 있어 매력적인 최고경영자의 모습을 보인다는 설명. 여성형 로봇의 경우엔 168㎝의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섬세한 미인의 형태라고 한다. 인간처럼 화장도 했단다. 남성과 여성 로봇 모두 와이파이 연결이 가능하고, 한 번 충전하면 2∼4시간 사용할 수 있다. 팔과 다리 관절의 움직임 또한 사람처럼 자연스럽다고 한다. 이 로봇의 예약 판매가 시작되자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4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구입 의사를 밝혔다. 예약금이 22억3000만원에 이르고, 해당 로봇 생산기업의 주가도 급상승 중이라고. 잘생기고 예쁜 로봇이 인간의 애인 역할을 하는 시대가 현실화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일까? 체온 없는 애인의 탄생을 반겨야 할 지, 경계해야 할 지 모르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6-17

어머니와 선돌

신천대로를 달려 4번 국도로 갈아타고 가다가 황학리에서 마을 길로 접어든다. 신동입석 표지판을 따라 풍월문을 지나면, 언덕 위에 오래된 선돌이 우뚝 서 있다. 비바람에 깎이고 허리가 부러져 깁스를 한 채로 선 선돌의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익숙하다. 선돌은 묻는다. 왜 서야 하는가, 왜 이 자리에 남아야 하느냐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내게도 홀로 서야 할 사람이 있다. 백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건강이 나빠져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올까 봐 안전이라는 이유로 손을 묶었다. 2주가 지난 뒤 혼자서는 설 수도 없게 된 어머니의 모습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머니에게 선다는 것은 이제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요양병원에서 시간은 잔인했다. 집에서는 자유롭게 걷던 몸이 손이 묶인 채 누워 있는 시간으로 인해 급격히 약해졌다. 집에선 돌볼 사람이 없어 병원에서 치료하고 방문 간병을 병행하기로 했다. 병원에 도수치료를 의뢰하고, 형제들이 팔다리를 주물러 주고 걷기 연습을 시켰다. 작은 반복들이 모여야만 어머니의 발은 다시 땅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처음 보행기를 잡고 섰을 때, 어머니의 손은 보행기를 꽉 움켜쥐었고,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손에 힘만 들어가고 발은 걸음을 떼지 못했다. 나는 선돌의 깁스처럼 어머니의 허리를 힘껏 잡고,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게 했지만,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선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선돌은 허리에 깁스를 한 채로 자리를 지킨다. 비를 맞고 바람에 깎여도 스스로 서 있는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소나무가 바람을 막아주고, 선돌로 인해 나무도 관리된다. 그 모습은 누군가에겐 보호로 읽힌다. 어머니의 한 걸음 한 걸음도 같은 맥락이다. 떨리는 발로 서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위로이고, 용기다. 서 있다는 건 자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견디는 태도이며, 한 사람의 자존감이 걸린 일이기도 하다. 선돌이 수천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경계를 말하는 것처럼, 어머니의 홀로서기도 그러하다. 언제나 자식을 위해 목욕하고 기도를 올리던 어머니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자식으로서 어머니 삶의 자리를 지켜 드리고 싶은 욕심과 어머니 자신이 온전한 삶을 다시 회복하길 바라는 간절함 사이에서 나는 자주 흔들린다. 사회생활 때문에 면회 가는 날을 자꾸 빼앗길 때면 마음은 불편하고 죄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자주 찾아가 어머니와 함께 걷는 연습을 계속하려고 한다. 내게 어머니의 걸음은 일상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개인적인 욕심으로 나이 많은 어머니를 괴롭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어머니의 눈빛과 손끝에서 분명한 소망을 보았다. 혼자 서고 싶은 욕구, 스스로 발로 일어서고 싶은 욕망이 아직 남아 있음을. 그 욕망을 함께 견뎌내는 것이 내 역할이라면 나는 그 역할을 기꺼이 떠맡을 것이다. 연습 끝에 어머니가 힘겹게 두 걸음을 옮기셨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오늘의 한 걸음이 내일의 여러 걸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작은 진전이 쌓일 때 비로소 걸음의 리듬이 돌아온다는 것을. 선돌이 깁스하고도 서 있음을 마다하지 않듯, 어머니도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해도 된다는 걸. 그 자리에 서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있음을 안다. 선돌 앞에서 나는 다짐한다. 서 있다는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며 주변을 지키는 태도다. 어머니의 다음 걸음을 위해 나는 매일 어머니 옆에 설 것이다. 손을 잡고, 등을 토닥이고, 함께 발을 내디딜 것이다. 그 손길이 어머니에게는 등불이 되고, 나에게는 삶의 방향이 되기를 바란다. 서는 일은 혼자의 일이 아니다. 선돌과 소나무가 서로를 보듬듯, 내가 어머니의 자리를 지켜줄 때 비로소 온전한 홀로서기가 가능하다. 오늘의 한 걸음이 내일의 굳건한 발걸음이 되도록, 나는 다시 선돌을 떠올리며 어머니 곁으로 향한다. /김규인 수필가

2026-06-17

‘교권활동보호국’ 신설을 반대한다

‘지독하게 잘한다’는 연예인 이수지 씨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는 웃음뿐만이 아니라 을을 대변하는 사회풍자도 많다. 최근 마무리된 어린이집 교사 영상은 이에 공감하는 댓글이 넘쳐나서 뉴스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호응이 컸다. 더 슬픈 것은, 영상 내용이 오히려 순한 맛이라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댓글이다. 영상 역시 끝내 속 시원한 문제 해결은 없고, 어린이집 교사는 끝까지 참다가 마지막 영상에서 원장이 유급 휴가를 주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아쉽게도 이 영상에는 그런 원장은 없다는 댓글로 도배되었다. 다행인 것은, 어린이집에는 진상 학부모는 있을지언정 문제 학생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중등 이상의 학교에서는 일부 학교폭력 학생들의 행동으로 피해 학생들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기도 하고, 교사들의 교육권을 위협하기까지 한다. 겉으로 보기에 아주 모범적인 우등생들도 비리와 일탈에 가담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한 학교 현장에 사이다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드라마 ‘참교육’이 인기몰이 중이다. 2020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연재 중인 웹툰 ‘참교육’이 원작인데, 현재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일본어, 프랑스어로도 연재되고 있다고 한다. 시즌1 10화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모두 현실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기반으로 했다고 하는데, 교육이나 교칙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악질적인 사례들이다. 드라마 속 학생과 학부모 가운데 잘못을 인정하는 사례는 등장하지 않는다. 교권보호국의 나화진, 임한림한테 죽음의 위협을 받을 정도가 되어야 살려달라고 빌 뿐이다. 웹툰으로 연재될 때부터 드라마까지 교권보호국의 폭력 수위가 높아서 이런 방식이 최선일 수는 없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반대로 그렇다면 악성 학부모와 문제 학생을 제재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런 와중에 안민석 국회의원이 교권보호국 비슷한 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기사가 뜨자 다시 논란이 일었다. 어떤 사람은 학교 현장이 이렇게 무질서해진 것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면서 그에 상응하는 교권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교권이 강했을 때도 문제 학생은 많았다고 반대한다. 그러나 학생 인권 조례의 내용은 인간으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 보장이고, 이런 인권 보장은 교육적으로도 필요하다. 이런 조례가 나온 것은 폭력 교사들도 한몫했다. 폭력 교사들이 휘두른 횡포가 교권이었던 것도 아니다. 용어를 엄밀하게 사용해야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진다. 안민석 의원 측에서 제시한 ‘교육활동보호국’이라는 명칭은 더 위험하다. 교육활동을 보호한다는 것은 철저히 교사 입장의 표현이다. 드라마에서는 시종일관 ‘학습권’이라는 말을 쓴다. 학습권이 훨씬 더 공정하고 객관적이다. 학교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은 옥상옥이 될 가능성만 많다. 현행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현행법으로, 부족한 부분은 법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6-17

우주의 균형과 인체의 균형

태양은 매 순간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지구의 생명을 유지시킨다. 하지만 태양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뜨거웠어도 지구는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행성이 되었을 것이고, 반대로 조금만 더 식어 있었어도 지금과 같은 생명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구가 액체 상태의 물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Habitable Zone)’이라고 부른다. 지구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절묘한 균형점에 위치하고 있다. 지구를 살리는 것은 강력한 에너지 자체가 아니라 적절한 균형이다. 건강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몸이 약해져서 병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몸을 조절하는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질 때 다양한 증상이 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우리 몸에는 자율신경계라는 자동 조절 장치가 있다. 교감신경은 활동과 긴장을 담당하고 부교감신경은 휴식과 회복을 담당한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교감신경은 가속 페달이고 부교감신경은 브레이크다. 현대인들은 하루 종일 가속 페달만 밟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균형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업무 스트레스, 경제적 부담, 인간관계의 문제는 끊임없이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킨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상승하며 소화기관으로 가야 할 혈액이 근육과 뇌로 우선 공급된다. 이는 원래 위험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한 반응이지만 현대인들은 맹수를 만나는 대신 끊임없는 경쟁과 과도한 정보 속에서 같은 반응을 반복하고 있다. 몸은 쉬고 있는데 정신은 쉬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단순히 잠을 설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답답해지고 이유 없이 불안해지거나 짜증이 늘어난다. 소화불량과 복부 팽만감이 나타나고 목과 어깨 통증, 만성 두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에는 화병이나 갱년기 증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이를 치료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몸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몸에 열이 위로 치솟고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가슴이 답답한 경우에는 과도하게 흥분된 상태를 조절해야 하며 반대로 쉽게 지치고 회복이 느린 경우에는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야 한다. 열이 치받는 상태에서 무조건 홍삼이나 보약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며 몸이 차고 기운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적절한 보강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강한 약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몸 상태에 맞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태양이 안정적으로 빛나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중력과 핵융합이 끊임없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만약 핵융합 에너지가 너무 강하면 태양은 팽창하고 중력이 지나치게 우세하면 수축하게 된다. 건강은 단순히 힘이 넘치는 상태가 아니라 몸이 스스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태양이 적절한 온도와 에너지를 유지할 때 지구에 생명이 꽃피듯이 우리 몸도 자율신경의 균형이 유지될 때 가장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건강은 무조건 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과정이다. 우주가 균형 위에서 존재하듯 우리 몸도 균형 위에서 건강을 유지한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6-17

공은 하나다

축구는 특별하다. 스물두 명이 뛰지만, 사실상 공 하나만을 향해 달린다. 정교한 규칙이 존재하지만, 축구 경기 안에는 기대와 거절, 경쟁과 협력, 기쁨과 낙망이 모두 담겨있다. 무승부로도 끝나지만, 우리는 모두 승부를 원한다. 전략을 짜고 위치에 따라 움직이지만, 모든 시선은 공 하나로 모인다. 스타 선수가 존재하지만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모두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 빛나는 골을 넣지만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희생을 해야만 한다. 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인간 일상의 축소판이다. 월드컵 시즌이면 더욱 그렇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지내던 사람들이 한 경기를 보며 함께 웃고 함께 탄식한다. 출신도 다르고 세대도 다르며 견해도 다르지만, 국가대표팀의 경기 앞에서는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축구로 인해 우리가 한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대한민국 축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감회가 깊다. 한때 우리는 월드컵 본선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큰 성취라 여겼다. 본선 무대에서 한 경기라도 이겨보는 것이 오랜 숙원이었다. 1954년 첫 출전 이후 수십 년 동안 월드컵은 꿈의 무대였고, 강호들과의 격차는 너무도 컸다. 우리 축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많은 선수와 지도자, 축구를 사랑한 국민들의 응원 속에서 조금씩 일어섰다. 차범근이 있었고 박지성이 있었다. 오늘은 손흥민이 세계 축구의 중심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깃발을 높이고 있다. 축구는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타들 뒤에는 수많은 선수들이 있었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선수들, 프로와 아마추어 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린 동료들, 어린 선수들을 길러낸 지도자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장을 찾은 팬들과 가족이 함께 빚어낸 결과다. 축구는 개인의 재능과 집단의 협력이 만나야 완성되는 스포츠가 아닌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거리마다 붉은 물결이 넘쳤고, 국민들은 새벽까지 잠을 잊으며 국대팀을 응원했다. 4강 신화에 열광했고,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 올라섰음을 보여주었다. 어느새 24년이 흘렀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 한국 축구는 또 한 번 성장했다. 본선진출에 만족하지 않고, 조별리그 통과를 기대하며 강팀과의 대결에서도 당당한 승리를 꿈꾼다. 한때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을 만나면 선전하기만 바랐지만, 이제는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대를 건다. 멕시코와 경기가 코앞이다. 여러 가닥 계산이 오가지만, 축구의 본질은 승리를 향한 도전이다. 우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했다. 비기고 나서 경우의 수를 따지고, 패배한 뒤 다른 경기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지리했었는지. 강팀은 일단 이긴 후에, 다음 수를 생각한다. 한국은 그런 축구로 나아가야 한다. 상대를 두려워하기보다 우리 축구를 믿고, 경우의 수를 따지기보다 승리를 목표로 삼는 축구를 해야 한다. 멕시코전이 어찌 되든지 대한민국 축구는 계속 성장할 것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기는 축구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격만큼 축구도 성장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누구도 업신여기지 못하는 대한민국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한 팀이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6-17

낙동강 복류수, 안정적인 食水로 가능할까

정부가 16일 ‘낙동강 복류수의 식수사용’ 검증 절차에 들어가면서 대구 시민의 오랜 숙원인 취수원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낙동강 복류수’는 지난해 12월 이재명 대통령이 안동댐 대신 대구 취수원의 대안으로 제시했었다. 복류수는 강바닥 아래의 자갈·모래층을 흐르는 물이다. 하천 표류수를 직접 취수하는 기존 방식보다 깨끗한 원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대구 수돗물의 67%(하루 53만t)는 낙동강 표류수를 취수해 사용하고 있어 1991년 구미공단 페놀 유출 사태를 비롯해 오염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 검증작업은 복류수의 식수사용 가능성을 실증하기 위한 첫 단계다. 문산정수장에 들어선 실증시설은 모래와 자갈을 채운 지상 수조로, 강물이 지층을 통해 걸러지는 복류수 취수를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다. 이 수조에 매일 낙동강 하천수 30t 이상을 여과시켜 충분한 수질(총유기탄소,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 등 기본 수질 항목부터 조류 독소, 미량 유해 물질까지 총 60개 항목 정밀 분석)과 수량(하루 60만t)을 확보할 수 있는지 검증한다. 검증 결과는 대구시와 정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검증위원회가 매달 평가하고 시민에 공개한다. 이날 달성군 문산정수장에서 열린 실증시설 가동식에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과 같이 참석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3단계 필터링(정수) 과정을 거치면 안동댐 물 이상으로 대구시민들이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는 35년간 지속돼 온 해묵은 현안이다. 그동안 구미 해평과 안동댐 취수원 이전이 거론됐지만, 주변 주민들의 민원과 사업비 문제 등으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표류해 왔다. 대안으로 제시된 낙동강 복류수를 활용하는 방안은 과학적인 정수작업을 거치는 데다 지자체 간 갈등문제도 없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검증위원회는 복류수의 수질·수량을 과학적인 데이터로 철저하게 분석해 그 결과를 대구시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평가받길 바란다.

202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