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문재인 정부가 4·7보궐선거에서 서울·부산시장을 모두 내주는 참패를 한 원인이 뭘까.

코로나19 때문에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친구들 몇명만 모이면 단골로 나오는 술안주였다. 여야는 물론 사람마다 다른 이유를 드는 바람에 정답을 알 길 없어 답답하던 차였다. 지난 11일 이 질문의 답변으로 가장 정답에 가까울 법한 내용이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이 최근 외부 조사기관에 의뢰해 진행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결과보고서에서 여당의 참패원인이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보고서엔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재보선에서 지지를 철회한 이들이 조국 사태와 부동산 문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선 “현 정권의 위선”, “그들만의 리그” 등을 꼬집는 반응이 나왔고, 부동산 문제, LH 사태에 대해선 “평생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다”는 좌절감을 토로한 의견이 이유로 제시됐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은 20·30대 여성 유권자들이 이탈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책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국민에 대해 큰소리치며 약속한 일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신뢰를 잃은 결과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청와대는 아직 꿈을 깨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청와대는 당초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되지 않은 임혜숙·박준영·노형욱 장관 후보자 3명을 모두 임명강행하려 한 정황이 역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연설에서 장관 후보자들의 임명 이유를 하나하나 들며 청문회 제도 자체의 개선을 요구해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국민정서와는 맞지않는 발언이었다. 보다못해 민주당 송영길 대표부터 초선의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고, 그제야 당청갈등이 조기레임덕으로 이어질 걸 우려해 3인의 거취 문제를 재검토하기 시작한 듯 싶다. 국민여론도 나쁘다. 여론조사기관이 최근 전국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장관 후보자 임명 여부를 물은 결과,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57.5%, ‘임명해야 한다’는 30.5%였다고 한다. 이 와중에도 친문 강성파 의원들은“누구를 특정하지 않고 최소 1명은 낙마시켜야 한다는 건 명분이 약하다”고 임명강행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점잖으면서 정곡을 찌르는 표현으로 나무랐다. 그는 “누가 봐도 장관으로 부적격자인 분들을 꼭 장관으로 임명해야겠나. 대통령의 오기와 불통정치를 보면서 분노를 넘어 이제 지쳤다”면서 “국민을 이기는 국가지도자는 없다”고 했다. 문재인호를 띄운 민심이 그 배를 엎을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였다. 결국 청와대는 박준영 해수부 장관후보자를 자진사퇴시키는 수순으로 이번 인사청문절차를 마무리하려는 모양이다. 여당이 패한 이유를 아무리 잘 분석하면 뭘 하나. 분위기 파악 못한 채 민심의 큰 파도에 맞서는 형국이 되어서야 말짱 헛일이다.

문 대통령은 집권 초기 자신이 약속한 공직배제원칙을 까맣게 잊은 듯 행동한다. 여당이 패한 이유는 아직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