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기적이었다. 돌아보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길지 않았던 직장생활 끝에 뜻을 정하여 떠나기는 했었다. 준비가 없었기에 매사가 서툴렀다. 그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오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지도교수로 만난 미라클(Gordon E. Miracle) 교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도움을 낯선 외국인 학생에게 주었다. 직장을 잡아 학교를 떠나기 전날, 교수님과 마지막 마주 앉은 만찬 자리에서 나름 대담한 제의를 던졌다. ‘교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 깊으므로 오늘은 무엇이라도 한 자락 갚아드리고 싶습니다.’ 뜻밖의 제안이었을까.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하였다. 그는 ‘자네를 위해 내가 선생으로 뭘 그렇게 했는지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그래도 자네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 여길 떠나 만나는 학생들에게 딱 그렇게만 하게나.’

충격이었다. 받은 생각을 새기며 돌아서 살아온 삼십 년이지만, 내가 그 말씀을 실천하였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스승과 제자. 그는 선생이라는 내색을 한 적도 없었다. 일상과 일과 가운데 선생이자 동료로서 온 힘을 다해 함께 하였고 모든 가능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그리 하고 있는가. 어느 한순간 받은 큰 도움이 아니라 칠 년을 건너며 날마다 받았던 스승의 은혜는 갚을 길이 없다. 나를 기억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흉내라도 내어보았는가. 아내가 새 일을 한다니까, 놀랍게도 구순을 넘기신 선생께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선생이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끝날 줄 모른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진심과 배려로 가득했던 선생이 그리워진다.

스승의 날. 빛바랜 현수막처럼 글자만 성가시다. 마음에 짐이 되어 슬며시 돌아가는 날이 되어버렸다. 어느 한 날을 잡아 어색하게 챙길 일이 아니다. 교육의 마당에서 날마다 만나는 선생과 학생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삶을 나누고 믿음을 쌓으며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에 끈끈해 져야 하는 게 스승과 제자의 사귐이다. 선생이 교권을 주장하고 학생이 인권을 외치는 곳은 학교가 아니다. 성토와 규탄의 장소라면 모를까 교육과 성장이 일어나는 곳일 수가 없다.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학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가르침의 의미를 새롭게 살려야 하며 배움의 큰 뜻을 들어올려야 한다. 받을 것을 챙기기보다 나눌 것을 고심해야 한다.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내일을 품은 게 아닌가. 내가 가르쳐 내일이 열린다는 가슴 벅찬 흥분으로 살아야 한다.

진심은 통한다. 학생들과 부모들이 인정하고 따라와 주는 일도 선생에게 달리지 않았을까. 온 정성을 들이면 식물도 반응한다는데, 온 마음을 쏟으며 만나는 아이들이 바뀌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스승은 그래서 ‘가르치는 일이 정신적 업무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육체적 노동이었더라’고 하였다. 마음과 몸을 던져 세상을 바꾸시는 선생님들이 저렇게나 많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