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경북의 언택트 관광지를 찾아
⑭ 월영교와 하회마을이 손짓하는 봄날의 안동

안동 월영교에 찾아온 봄.

현대인이 잊고 사는 전통문화가 계승되는 공간인 동시에 선비의 품격이 존재하는 도시. 안동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그렇지 않다. 안동은 전통문화와 선비정신 외에도 여행자가 매료될만한 여러 가지 것들이 적지 않은 곳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국의 관광산업을 피폐화시키기 이전인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안동시를 찾았다.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인 안동한우, 헛제삿밥, 국수 등을 먹고, 안동댐과 임하댐을 둘러봤으며, 고색창연한 종택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안동엘 갔으니 당연지사 하회마을의 고즈넉한 풍경 속을 걷기도 했으며, 월영교의 낭만적인 야경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즐거움도 누렸다.

 

낙동강 물결 위에 놓인 ‘월영교’

새소리·물소리·물안개… 낭만적 야경

낙동강이 동서남쪽 휘감은 ‘하회마을’

초가·기와집 따라 흙길 속 옛 정취 물씬

◆ 고요한 물안개를 만들어내는 댐의 도시 안동

도산면 가송리 농암종택(聾巖宗宅)에서 맞은 아침 풍경은 2년이 지난 아직까지 기억 속에 선명하다. 농암종택은 어떤 곳일까. ‘두산백과’엔 이런 설명이 실렸다.

“농암 이현보(1467~1555)의 종택(宗宅)이다. 이현보는 1504년(연산군 10년)에 사간원정언으로 있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인물.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원래 종택이 있던 분천마을이 수몰되었다. 안동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건돼 있던 종택과 사당, 긍구당(肯構堂)을 영천 이씨 문중의 종손 이성원이 한곳으로 옮겨 놓았다.”

지척에 조그만 강이 흐르는 농암종택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이 밝았다. 도시에선 들을 수 없는 새 소리와 찰랑거리는 물소리. 거기에 낮게 깔린 물안개가 여행자를 환영하고 있었다.

번잡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농암종택 주변을 산책하며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들었던 ‘평화롭고 아늑한 아침’을 느꼈다. 이는 안동이 복잡한 일상을 허위허위 살아온 기자에게 준 선물 같았다.

매년 다시 찾아 또 다른 매력을 느끼고 싶은 안동. 그러나 세상은 사람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누구도 반긴 적이 없건만 슬그머니 찾아와 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여행자들의 발을 묶어놓은 코로나19 바이러스.

2020년 초반부터 시작된 ‘코로나 광풍’은 1년 4개월 가까이 단체관광객을 실은 버스를 사라지게 만들었고, 가족과 친구, 동창과 동호인들의 봄맞이와 단풍놀이를 멈춰 세웠다.

◆ 월영교를 거닐며 느끼는 안동의 매력

여행의 트렌드가 ‘언택트 관광’으로 바뀐 것도 이미 오래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찾아오는 관광객의 안전과 방역수칙 준수에 고심하고 있다.

어쨌건 바이러스가 인간의 삶을 온전히 멈출 수는 없는 법. 안동시 역시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언택트 관광지를 알리고 안내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그렇다면 언택트 시대 안동의 관광명소는 어딜까? 월영교는 코로나 시대 안동의 대표적 언택트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눈부신 햇살 일렁이는 낙동강 물결 위에 놓인 월영교를 거니는 것도 좋고, 지척 안동댐 민속촌의 한적한 풍경과 마주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개목나루로 여행자를 마중 나온듯한 황포돛배를 보는 기쁨도 크다.

안동시는 6천여 점의 유물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안동시립민속박물관과 국무령 이상룡의 생가인 임청각, 낙강물길공원, 유교랜드, 안동공예문화전시관 등도 가볼만한 여행지로 추천하고 있다.

“안동 보조댐을 둘러싼 월영교, 월영공원, 성락교, 개목나루로 이어지는 원형의 둘레길은 은은한 조명과 함께 조화롭게 이어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감탄을 자아낸다”는 것 역시 안동시 관계자의 부연이다.

‘언택트 시대 안동 관광 1번지’로 떠오른 월영교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다리일까? 이 궁금증에 안동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답을 들려준다.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댐으로 이루어진 울타리 같은 지형이 밤하늘에 뜬 달을 마음속에 파고들게 한다. 달을 강물에 띄운 채 가슴에 파고든 아린 달빛은 잊힌 꿈을 일깨우고, 다시 호수의 달빛이 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 월영교는 자연 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그보다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고자 했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 모양을 다리 모습에 담았다. 그 위에 올라 그들의 숭고한 사랑을 우리의 사랑과 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안동 하회마을.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안동 하회마을.

◆ 안동이 고향인 시인의 시를 떠올리며 하회마을로

낭만 넘치는 월영교를 돌아본 후 어디를 가야할까를 고민하는 관광객이라면 하회마을을 추천하고 싶다. 거기로 가기 전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살고 있는 시인 안상학(59)의 시 한 편을 읽어보는 건 어떨지. ‘얼굴’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세상 모든 나무와 풀과 꽃은

그 얼굴 말고는 다른 얼굴이 없는 것처럼

늘 그 얼굴에 그 얼굴로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닌 때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꽃은 어떤 나비가 와도 그 얼굴에 그 얼굴

나무는 어떤 새가 앉아도 그 얼굴에 그 얼굴

어쩔 때 나는 속없는 얼굴을 굴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과장된 얼굴을 만들기도 한다

진짜 내 얼굴은 껍질 속에 뼈처럼 숨겨두기 일쑤다

내가 보기에 세상 모든 길짐승, 날짐승, 물짐승도

그저 별 다른 얼굴 없다는 듯

늘 그렇고 그런 얼굴로 씩씩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아니래도 그런 것처럼, 그래도 아닌 것처럼

진짜 내 얼굴을 하지 않을 때가 많다

나는 오늘도

쪼그리고 앉아야만 볼 수 있는 꽃의 얼굴과

아주 오래 아득해야만 볼 수 있는 나무의 얼굴에 눈독을 들이며

제 얼굴로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들과 달리 가식과 위선의 얼굴을 가진 인간. 정직하고 과장 없는 얼굴로 사는 길을 함께 고민하자고 권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봄날 햇살처럼 따스하다.

‘쪼그리고 앉아야만 볼 수 있는 꽃의 얼굴과/아주 오래 아득해야만 볼 수 있는 나무의 얼굴에 눈독을 들이며/제 얼굴로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안상학의 고백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하회마을에 닿아 있을 것이다.

그 옛날 선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하회마을.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이 소개하는 하회마을을 아래 요약한다.

“낙동강이 마을 전체를 동쪽과 남쪽, 서쪽 세 방향으로 감싸 도는 빼어난 터에 자리 잡은 풍산 류씨 동성 마을이다. 지형은 풍수학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이라고 한다.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흐른다 하여 하회(河回)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동 하회마을은 대체로 허씨와 안씨 등 유력한 씨족이 살아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1635년 기록에 따르면 류씨가 가장 많이 살았다고 한다. 낙동강 상류인 화천(花川)이 흐르며, 그 둘레엔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하회마을을 한 번이라도 찾아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때론 현재보다 과거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야트막한 지붕의 초가와 멋스런 기와집이 공존하고,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에 봄 햇살이 넉넉하게 뿌려지는 곳. 평화로운 고요함 속에서 살아온 생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하회마을이다.

‘코로나19 시대’가 오기 전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가 그리운 요즘. 하회마을과 월영교, 조용히 밀려드는 안동댐의 새벽 물안개가 코로나19가 준 상처를 다독여주는 풍경과 만나보길 권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