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br>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신록의 싱그러움이 날로 달로 두터워지고 있다. 풋풋하고 연푸른 잎새들이 일제히 손 흔들고 수수한 이팝꽃과 아카시아꽃이 가세하며 생기를 더하고 있다. 지천에 초록의 물감이라도 풀어놓은 듯 들판이나 산천에는 생명과 성장의 몸짓이 왕성하다. 간간이 송화가루가 누런 연기처럼 날리면서 연초록 물결 위에 희뿌연 꽃빛이 어리는 산야는 푸르고 생기발랄한 수채화를 그려가는 듯하다.

파스텔톤 색조에 만화방창한 5월은 정겨움과 은혜와 고마움과 숭고함이 가득한 달이다. 가정의 달이기에 그만큼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배려하고 포용하며 존경하고 기념하는 날이 많은 걸까? 온화한 날씨만큼이나 가슴 따뜻하고 살가운 정으로 사람들은 가족을 보듬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주위를 살펴 하나하나 베풀게 된다. 자라나는 새싹들이나 언제나 고마우신 어버이,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 가정을 이루는 부부 등에게 각별한 의미를 부여해 뜻과 정성을 다하고 챙기며 기리는 모습은 정겹고 아름답기만 하다.

해마다 오월이면 필자에게는 잊지 못하고 떠오르는 분이 계신다. 아련한 초등학교 5, 6학년 담임이셨던 은사님이다. 어렴풋한 기억 속의 선생님께선 멋쟁이 총각 훈남(?)으로 늘 배움과 운동을 강조하시며 많은 가르침을 주셨는데, 45년이 흘렀음에도 은사님의 모습은 더욱 또렷해지고 베풀어 주신 은덕은 나날이 짙어가는 신록 마냥 한결 두터워지고만 있다. 졸업한지 30년만에 처음으로 전화를 드렸었는데, 당시 포항교육청교육장으로 계시던 은사님께서는 한 세월 저편 제자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들으시며 각별한 반가움으로 한동안 수화기를 놓질 못했었다.

2년 간의 담임시절 동안 은사님께선 60여명 학급 학생들의 일기장을 유난히 자주, 철저히 검사하셨다. 일기를 몇일 거른 학생에게는 따끔한 벌을 내리고, 잘 쓴 일기장에는 도움말씀과 아울러 학급 조회시간에 칭찬하기도 하셨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저학년 때부터 듬성듬성 대충 써오던 일기를 아마도 당시 선생님의 훈학방침의 영향으로 그때부터 제대로, 꾸준히, 쉼없이 써야겠다는 마음을 다진 것 같다. 어쩌면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생활 속의 글쓰기와 메모하기를 즐기고 간혹 시조도 긁적이며 글쓰기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십 수년 전 제자의 첫 개인전 때 직접 오셔서 축사를 해주실 정도로 늘 건재하신 은사님께서는 요즘은 매주 실리는 필자의 칼럼 졸고에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한번도 놓치신적 없이 조언과 덕담으로 격려해 주신다.

어쭙잖은 글이지만 은사님께서는 언제나 공익의 가치와 공동선의 영향력을 강조하시며 촌철의 혜안으로 마치 45년 전 서툰 일기장에 도움말을 쓰시듯이 알림톡으로 채근하고 가편해 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이렇게 날이 갈수록 사제지간의 정은 깊어만 가니 새삼스럽고 그윽하기만 하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평생교육이 시사하듯이 인간은 가정, 학교, 직장, 사회 등 전 생애에 걸쳐 학습과 교육으로 이뤄진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敎學相長)하듯이 자연과 인간이 가르치면서 배우고, 가정과 사회가 배우면서 가르치는 학습문화가 조성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