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충택<br>논설위원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 부처를 대표해서 해외 대사관에서 근무한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아내가 고가 도자기 밀수 의혹에 휩싸여 물의를 빚고 있다. 박 후보자는 지난 2015~2018년 주영(駐英) 한국대사관에서 공사참사관으로 재직할 당시 부인이 1천점이 넘는 도자기 등을 관세를 내지 않고 ‘외교행낭(외교관 이삿짐)’으로 반입해 판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4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집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입했다고 했지만, 야당에서는 “외교관 신분을 이용해서 수천 점의 도자기를 이삿짐으로 위장해 들여와 사적으로 판매까지 한 파렴치의 끝판왕”이라며 맹비난을 하고 있다. 김근식 국민의힘 전 비전전략실장은 페이스북에 “박 후보자 부인의 도자기 밀수의혹은 가장 악질적인 경우”라고 올렸다.

국제사회에서는 외교관 밀수행위가 북한의 전매특허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주체코 북한 외교관이 현지 사업가에게 접근해 무기와 드론을 구입하려다 체코당국에 적발됐으며, 2015년에는 남아공 주재 북한 대사관 외교관이 모잠비크에서 코뿔소 뿔을 밀매하다 체포돼 추방됐다. 2019년에는 또 다른 북한 외교관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상아를 밀수하다 네덜란드 당국에 적발됐는데, 당시 “아프리카 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생계비와 평양에 보낼 충성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밀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난해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가 현직 이란주재 북한 외교관이 금과 현금 밀수에 가담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북한이 해외 외교관을 통해 무기와 사치품을 상습적으로 밀수하는 것은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파견 대상 국가에서 누리는 다양한 특권 때문에 가능하다. 외교관은 파견국을 대표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다양한 혜택을 보장받고 있다. 외교관과 그 가족에게는 1961년 만들어진 ‘외교 관계에 대한 빈 협약’에 따라 면책특권이 적용된다. 범죄행위를 하더라도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 신체불가침 특권이 있다. 외교관 가족(본인, 배우자, 자녀)에게 자동으로 발급되는 외교관 여권은 공항에서 VIP의전 혜택을 받으며 파견대상 국가에서 조세면제도 받는다. 최근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이 서울의 한 의류 매장에서 직원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면책특권 때문에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벨기에 현지 언론을 통해 상세하게 전해져 대사 부인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공무원의 배우자가 외교관시절 대량으로 사들인 도자기를 무관세로 국내반입해서 만약 판매까지 했다면 분명한 범죄행위다. 외교관 특권은 사적이익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감사원이나 외교부는 박 후보자 부인사건을 계기로 해외 외교관과 그 가족의 공직기강 문제를 대대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달성군 화원읍 인흥마을 남평문씨 세거지 목화밭 앞에는 고려말 외교관이었던 문익점 동상이 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은 백성을 위해 붓뚜껑 속에 목화씨를 숨겨와 우리나라 의복문제를 해결한 문익점에게서 외교활동의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