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사회 진단 / 심각해지는 가족 해체<프롤로그>
연령층 구분없이 이혼 속출
아동 학대에 노인 자살까지
우리 사회 일그러진 자화상
1인 가정 등 새 형태도 속출
외국에선 연구 대상 삼았던
귀중한 전통 가치 회복해야

어린이날, 어버이날, 한부모가족의 날, 부부의 날이 있는 5월이 되면 옛날 대가족이 살았던 고향집이 그리워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고향집은 ‘전원일기’ 드라마에 나오는 일용이네 집처럼 깊은 산골 초가삼간이었다. 이 작은 집에서 부모님과 우리 형제(5남3녀), 결혼한 큰 형님 가족이 같이 살았다. 10마지기 채 안 되는 논과 산자락에 있는 몇 뙈기 밭으로 담배·고추농사를 지으며 전 가족이 먹고 살았으니 풍족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큰형님은 동생들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부모님을 설득시켜 초등학교만 마치면 아들, 딸 가리지 않고 대구로 진학시켰다. 여름방학 때 어쩌다 농사일을 거들거나 친구들 따라 꼴을 베러 가면 형님, 형수님이 깜짝 놀라며 말렸다. 팔순이 넘었지만 지금도 말을 놓고 지내는 큰 형수님은 나보다 두 살 많은 조카와 시동생을 같이 키우면서 마음을 많이 다쳤겠지만 언짢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형제끼리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든 요즘에는 먼 옛날 얘기가 돼 버렸지만, 대가족이 한집에서 부대끼며 혈육의 소중함을 알았던 그때가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꼰대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가족 간 포용과 사랑, 그리고 효도는 가족공동체가 해체되지 않고 존속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가치다. 이러한 가치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며 살았던 우리 국민의 유교정신은 외국학자들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일부 정치사회학자들은 한국의 경제발전 원동력을 우리나라 가족제도에서 찾고 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는 한국에서 가져갈 것이 있다면 가족제도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귀중한 유산으로 외국인들이 부러워했던 우리 가족공동체가 마치 갑작스런 재난을 당한 것처럼 붕괴돼 가고 있다. 가족간 충만했던 포용과 헌신, 사랑이 사라지고 그곳에 해체와 고립, 불화라는 그늘이 자리잡았다. 사회전체가 가족해체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개선점을 찾아나가야 하지만, 우선 집권여당조차 이를 외면하며 권력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가족공동체 붕괴는 부부의 이혼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중년부부, 노년부부 할 것 없이 갈라서는 가정이 속출하고 있다. 구두쇠, 외도, 경멸, 담쌓기 등의 단어가 주요 이혼사유로 인터넷에 오르고 있다. 부부의 이혼으로 인해 가난한 조손가정도 증가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가장 역할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손자들을 키우느라 길거리에서 폐휴지를 줍는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는 가족해체의 비참한 결과를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노인 자살 소식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린다. 우리나라 노인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가 된 지 오래다. 노인 음독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농약병을 한데 모아 자물쇠로 채워 보관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있을 정도다. 미혼모·부 가정, 한부모 가정, 위탁가정, 1인 가정 등 새로운 가족형태가 증가하면서 ‘정상 가정’이란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시대가 됐다.

‘심각해지는 가족해체’ 문제를 △멀어지는 부부사이 △조손가정의 그늘 △자녀학대 △노인자살 △1인가구시대 △새로운 가족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진단하는 시리즈를 싣는다.

/심충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