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4월이 잔인한 달이라면, 5월은 포근한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부부의 날도 있다. 하필 같은 달에 모여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어린이날. 나라를 잃었던 암울한 시절에 소파 선생이 우리의 앞날은 어린이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아닌가. 어른들이 잘난 재주를 부린다 한들 미래는 어차피 다음 세대가 맡아야 한다. 어린이를 정성으로 기르지 못하는 백성에게는 내일이 없다. 어린이가 바르게 배우지 못하면 새로운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 어린이가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어른의 세계가 아무리 복잡하여도 어린이를 바로 가르치고 기르는 일에는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아이들 없이는 내일도 없다. 청년세대가 출산을 꺼리는 세태도 곰곰이 짚어봐야 한다.

어버이날. 모든 존재는 어버이로부터 시작됐다. 기쁨과 쓸쓸함, 즐거움과 외로움의 뿌리도 따지고 보면 어버이로부터 시작했다. 삶이 가능한 시작에 어버이가 있었던 기억만으로도 고마운 게 아닌가. 내가 걸어갈 내일 모습을 보여주는 이도 어버이가 아닌가. 사노라면 애증이 섞이고 희비가 엇갈리지만 온갖 일들의 시작에 어버이가 계셨음을 새겨보아야 한다. 어버이가 바라보는 어린이는 누구일까. 아이들은 들은대로 자라기보다 본대로 자란다. 어린이가 따라 배우는 어버이가 있고, 어버이가 조심해야 하는 어린이가 있다. 두 날을 잇달아 붙인 까닭이 아닐까. 조금 떨어져 둘이 하나가 되라는 21일은 부부의 날. 저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만난 일만 해도 기적이 아닌가. 당신과 내가 이룬 집에서 피어난 이야기는 꿈인가 생시인가.

5월은 ‘함께 하는 비밀’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이 홀로는 절대로 살지 못한다. 식탁에 올라온 고마운 반찬 한 자락에도 수많은 이들의 수고가 스며있다. 서로 기대어 사는 게 인생이 아닌가. 인연과 우연이 겹치며 날들이 펼쳐진다. 그런 가운데 맨 처음 기적이 어버이와 어린이가 아니었을까. 내 어버이와 내 아이들만 해도 놀라울 판에, 살면서 만나는 도움의 손길과 의지했던 기억들은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마도 온전한 오늘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빼놓을 수 없는 도움은 스승으로부터 받았던 배움이 아닌가.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은 물론이며 살면서 만났던 배움의 흔적은 잊을 수가 없다. 배우고 가르치며 부추기고 이끌어가며 삶의 수레는 오늘도 나아간다. 만난 것도 놀랍지만 배운 일은 기적이다.

돌아보면 실수투성이에 흠결만 한가득이다. 어린이에게 따뜻하지 못했으며 어버이에게 무심했던 데다 배우자에게 퉁명스러웠으며 스승은 잊고 살지 않았는가. 5월은 미안한 마음을 일깨우고 감사한 생각을 일으킨다. 돌아가 돌이키려 하지 말고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 하라’는 어느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다. 나를 만들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살면서 만날 사람들과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꿈을 꾸어야 한다. 혼자는 못한다.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지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