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br>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몇 차례의 꽃잔치에 이어 산과 들엔 잎새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싱그러운 잎새들이 넘실대는 초록세상, 진초록 위에 연초록 잎새가 겹쳐서 피어나고 군데군데 산벚꽃들이 희끗희끗 수놓으며 수채화 같은 자연의 화폭을 드리우고 있다. 신열인듯 환희인듯 울음처럼 복받치는 그리움인듯, 온통 초록의 물결로 일렁이는 4월은 잎새달이라고도 한다. 초록의 농담(濃淡)으로 펼쳐지는 왕성한 신록의 향연이 코로나블루로 지쳐가는 일상에 생기와 활력으로 그나마 위무해주는 듯하다.

봄의 싱그러움과 상쾌함은 가까이 다가가면 자세히 느낄 수 있다. 벌들이 잉잉거리며 일년을 준비하는 소리와 꽃송이가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모양과 빛깔, 그리고 향긋한 봄의 맛! 꽃과 풀과 나무들의 미세하고 섬세한 순간의 움직임과 순차적인 변화는, 자연의 시간이 흐르는 대지에서 저마다 창조적인 손길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조화와 균제를 이뤄가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즉 구름이 떠돌다가 비를 내리면(雲行雨施)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水流華開) 싹이 돋아나듯이, 자연만물은 때가 되면 시의적절히 제각각의 모양새대로 구실과 기능을 하며 큰 세상을 움직여가고 있는 것이다.

대자연이 이럴진대 인간사회도 이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출생해서 성장하고 성숙, 완숙하여 소멸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수많은 관계와 자리, 역할과 부름으로 필요에 따른 구실을 하거나 공공의 기여를 하게 된다.

즉 살아가고 활동하는 것이 저절로 주어지고 당연히 이뤄지는 것 같지만, 생장과 생업, 연명의 과정에는 자의적인 목적과 노력, 타의적인 가치와 요구가 수반돼 자신의 삶이 다채롭게 꾸며지는 것이다. 그렇게 이뤄지는 각양각색의 삶이 모이고 더해져서 사회가 조화롭고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마치 연록, 담록, 황록, 진초록의 잎새가 온 산천에 어우러져 잎새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나 하나 꽃피어/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말하지 말아라/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결국 풀밭이 온통/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시 ‘나 하나 꽃 피어’ 중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오롯이 파고들며 자신과 가정만 잘 꾸려가면 되는 줄 알았었다. 그러나 차츰 주변의 상황이나 위상, 관록에 비춰서 그에 걸맞는 역할이나 사명을 해야함으로 인식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를테면 사회를 위한 공헌활동이나 재능기부 또는 관변단체나 협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제반활동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고 진정한 보람과 행복을 찾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그러한 기회와 여건은 오지만 누구라도 그렇게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않은 일일 것이다.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작은 나눔과 베풂, 헌신과 기여로 사회적인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는 보다 밝고 아름다운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섬김과 봉사로 채워가는 정성과 노력의 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나면 온통 미덕의 향기 가득한 꽃밭이 되리라. 신록의 물결 속에 초록의 언어로 공동선의 편지를 쓰는 고운 봄길을 우러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