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주씨 집안의 집성촌
주자의 34대 후손 주인호 씨
13대째 지켜… 현재 2가구 뿐

영주시 휴천3동 독주골 전경.

[영주] 조선 초기부터 주씨 집안의 집성촌을 이뤘던 영주시 휴천3동 조암동 속칭 ‘독주골’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독주골의 지명은 주씨들만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라는 설과 마을이 옹기 독 같이 생겼다는 것에서 유래 됐다는 설이 있다. 독주골의 주씨들은 주자의 후손들이다.

현재 독주골에는 2가구가 있으며, 이중 주씨 성씨는 주인호(72)씨 1가구 뿐이다. 주인호씨는 주자의 34대 자손으로 독주골에서 13대째 대를 이어오고 있다. 독주골에 주씨들이 터전을 마련한 것은 명나라가 청에 멸망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이 조선을 침탈하면서 조선으로 피해 있던 주씨들을 또 다시 죽이려 하자 경주를 중심으로 살던 주씨들이 영주, 울진 등으로 흩어지면서 독주골이 생기게 됐다.

주인호씨는 “어릴적 기억에 독주골에는 주씨 성을 가진 7가구가 거주했고 2000년 초까지 이어져 왔으나 고령에 따른 사망, 도시 이주 등으로 모두 흩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1년 중 명절과 벌초 등 몇 차례 친인척들을 만나는 날이 기다려 진다”며 “가족과 친인척들이 찾을수 있는 고향을 지키는 보람도 있다”고 했다.

영주시사에 보면 조선 초기 독주골과 인근한 웃전단 마을에 전라도 화순에서 이주해온 주견용(朱見龍)이란 사람이 살았다. 주견용은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후손이라는 기록도 있다.

한때 다양한 이유로 형성된 집성촌들이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도시 이주 및 인구 감소 등으로 독주골처럼 시민들의 기억 속에 잊혀져 가고 있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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