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이후 9년 만에 신작
이용주 감독
“꼭 찍어야 하는 영화 무사히 찍어”

이용주 감독 (위), 촬영 현장의 이용주 감독. /CJ ENM 제공

“이젠 ‘서복’이 대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사랑 열풍을 불러온 영화 ‘건축학개론’(2012) 이후 9년 만에 신작 ‘서복’을 내놓은 이용주 감독은 오래 끌어안고 있던 짐을 털어낸 듯 말했다.

최근 진행한 온라인 인터뷰에서 이 감독은 “꼭 찍어야 하는 영화를 무사히 찍었고, 개봉하게 됐으니 감독으로서 중요한 코너를 돌았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두려움은 숙명이다.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그걸 인정함으로써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다’라는 말을 모토처럼 삼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게 2013년.

‘스타 배우들이 함께한 SF 대작’이라는 솔깃한 외피 안에 영생하는 초월적 존재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을 통해 죽음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을 성찰하는 영화 ‘서복’을 내놨다.

이 감독은 전작의 흥행이 “엄청난 부담이었고, 그래서 오래 걸린 것도 있는 것 같다”며 “다음 영화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건축학개론’은 데뷔작이었던 ‘불신지옥’보다 먼저 썼던 건데 상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제작이 무산됐고, 한이 맺혀서 다시 꼭 찍고 싶었던 작품이라 흥행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어요. 흥행을 이유로 워낙 거절을 많이 당했으니까요. 그런데 흥행이 되고 나니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엄청난 부담이었죠. 너무 칭찬을 많이 들어서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 욕먹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경직되지 않았나 반성합니다.”‘건축학개론’의 성공 이후 멜로 시나리오 제의가 많았으나, 감독은 ‘관심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건축학개론’을 멜로 영화로 구분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전직인 건축에 대한 저의 감정과 오래된 집, 부모님, 30대의 감정 등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쓴 것이지 멜로라는 장르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고 했다.

 

‘서복’ 역시 SF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택한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먼저 있었고 그 의도를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복제인간이었을 뿐이라고 감독은 강조했다.

“저도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게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규정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 게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이기도 했어요. 영원이라는 것은 불가능한데 뻔히 알면서도 떨어진 돌을 다시 언덕으로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유한함과 두려움을 인정했을 때 무엇이 의미 있는지 확연히 보이지 않을까, 어떤 자세로 바라봐야 할까 하는 고민이 시나리오에 담겼죠.”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서복은 진시황에게 바칠 불로초를 찾으러 떠난 신하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감독은 서복을 미래 과학 기술의 집약체라기보다는, 인간을 뛰어넘는 죽음을 초월하는 존재로 상정하고,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인간 기헌의 시선으로 서복을 바라본다.

미래 기술이 거대한 기업에 의해 사유화되거나 권력의 무기가 되는 건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백신 민족주의와 비슷하다”며 “그 안에 두려움에 대한개인적인 고민이 녹아들길 바랐다”고 감독은 말했다.

지난해 개봉을 준비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정을 미뤄온 영화는 오는 15일 극장 개봉과 함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티빙에서 동시에 공개된다.

이 감독은 “OTT는 처음이고 코로나 시국에 과도기를 지나며 영화 지형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고 기대도 된다”면서도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인 건 사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개봉해도 ‘서복’은 당분간 안 볼 생각입니다. 너무 많이 봐서 힘들어요. 바로 준비할 다음 작품이 ‘서복’과 비슷한 이야기는 절대 아니겠지만, 역시 제가 갖고 있던 고민의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가 되겠죠. 무엇이 더 끌리는지 찾고 있는 단계지만, 무엇이든 빨리해야 한다고는 다짐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