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주변의 나무.
왕릉 주변의 나무.

경주 낭산(狼山)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왕릉을 한 바퀴 휘돌아 넓은 들에도 안부를 묻는다. 명지바람은 농수로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에 머물다가 그 다리를 건너 풀꽃들에 손을 내민다. 코끝을 스치는 쑥, 명주꽃, 냉이의 향기는 연둣빛으로 물든 들판에 향긋한 지문으로 남는다.

오늘은 보문동에 위치한 진평왕릉을 찾았다. 경주의 고분을 시시때때로 보았지만, 웅장함보다는 온화한 느낌이 든다. 호석이나 둘레를 친 돌난간, 문인석, 무인석 등 왕릉을 수호하는 석물이 없다. 그래서일까. 팽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들이 도열해 왕릉을 지킨다.

나무에도 그들만의 간격이 있다. 너무 가깝게 있으면 햇볕을 더 많이 받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고, 몸피를 튼실하게 채우는 것보다 가지를 위로만 뻗으려 한다. 멀어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나무이다. 왕릉과 조금은 떨어진 곳에서 왕버들 나무가 두 눈 부릅뜨고 서 있다. 천 년의 시간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늠름한 왕버들 나무다.

왕버들 나무는 농수로를 끼고 우뚝 서 있다. 나무의 키나 가지 퍼짐이 곡진했던 시간을 말해준다. 나무의 줄기는 껍질이 깊게 갈라지는 왕버들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데 나무 몸통의 원줄기는 점점 쪼그라들고 새로 난 곁가지들이 어제와 오늘이 여기서 공존한다.

왕버들 나무의 밑둥치와 몸피가 빚어내는 기묘한 꿈틀거림은 진귀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한 겹 쌓고 한 겹 내주는 몸피는 용트림하듯 하늘로 치솟는다. 밑둥치가 땅속 물줄기를 찾아 뿌리를 내리면 봄의 전령이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왕버들 나무는 사부작사부작 몸피를 불린다.

 

들판에 우뚝 선 왕버들 나무.
들판에 우뚝 선 왕버들 나무.

농부에게도 왕버들 나무의 보살핌은 기껍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을 둘러보는 나무는 농부의 마음까지도 다독인다. 노동에 힘든 농부의 시름과 고통을 잊지 않고 씻어준다. 봄이면 봄바람을 몰고 와 겨울잠을 자는 들판의 땅을 깨우고, 여름이면 뙤약볕의 그늘이 되고 비바람 몰아쳐도 꿋꿋하게 견딘다. 가을이면 마침내 황금 들녘을 같이 바라보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버드나무는 물과 친근해 주로 물가에서 자란다. 물을 좋아하는 나무는 이름도 다양하다. 가지가 부드러워서 부들나무이었다가 버드나무로 바뀌었고, 나무, 잎과 가지가 용처럼 뒤틀리며 자란다고 해서 용버들, 전라도 사투리가 갯버들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버들피리에 쓰는 갯버들, 그리고 깊은 달밤 물가에서 머리 풀어헤친 것처럼 보이는 능수버들이 있다. 왕버들은 능수버들이나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하늘거리며 땅으로 처지지 않고 하늘 향해 우뚝 서자란다. 굵기 또한 오랫동안 잘 자라 웅장한 멋을 지닌 나무이다. 버드나무는 정자나무로도 손색이 없어 당산나무로 모셔지기도 한다.

나무는 우리 삶 곳곳에 등장한다. 예로부터 우리의 이야기에도 나무를 소재로 하거나 그것을 이용한 이야기가 많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호랑이에게 쫓기다가 급하게 도망간 곳이 우물가 버드나무였고, ‘토끼와 거북’에서 토끼가 나무 밑에서 쉬다가 잠이 든 곳도 떡갈나무였다.

이순혜수필가
이순혜
수필가

고향마을 동네 우물가에도 왕버들 나무가 있었다. 주말이면 어머니들은 빨랫감을 들고 와 빨래를 했다. 두꺼운 옷은 빨랫방망이로 두들겨 땟물을 벗겨냈고, 방망이에 실컷 두들겨 맞은 겉옷은 나뭇가지에 척 걸쳐져 한 방울 한 방울 물기를 쏟아냈다.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속옷은 손으로 조물조물 치대며 정성을 다했다. 친구들과 온 동네 골목길을 쫓아다니다 우물가에 가면 용하게도 나뭇가지에 걸린 옷들이 가벼워질 때다. 어머니들은 빨래를 주섬주섬 담고 어린 자식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

곁에 있다는 것은 함께 산다는 뜻이다. 같이 한다는 것은 어디에 가거나 무엇을 하든지 늘 따라다닌다. 기억의 곳간에 자리 잡은 우리들의 나무 이야기는 드러내고도 또 쌓이는 화수분과 같다.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 아래에는 어머니, 그 어머니들이 모여 앉아 내일을 퍼 올리는 장소였다. 또한,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해 우리를 울렸고 웃게 했고, 심지어 두렵거나 영험하기까지 하여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버드나무의 왕이라서 왕버들 나무이다. 천년의 시간을 견디며 모든 것을 받아주느라 지쳤을 텐데, 왕버들 나무의 위엄은 변함이 없다. 왕버들 나무는 이곳에서 눈과 귀를 열어 백성의 한숨과 고달픔을 살폈다. 넓은 들의 곡식도 왕의 보살핌이 닿을 수 있게 살폈고, 기원하는 손짓을 하늘로 향했다.

왕버들 나무도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