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사람
33년 직장생활 끝내고 작가 꿈꾸는 차성환 씨

33년 8개월 직장인으로 살다가 최근 퇴직한 차성환 씨는 이제 ‘글’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꿈을 꾼다.

‘아버지는 소금 산이다. 아버지의 삶은 소금과 같은 것이었다. 쓴맛, 신맛, 단맛을 더욱 더 돋우고 스스로는 짜디짠 존재가 되어야한다. 아버지의 일생은 아버지라는 단단한 고체에서 액체 상태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용해의 삶이었다. 그것이 아버지이며 아버지다움이다.’

재론의 여지없이 잘 조탁된 좋은 문장이다. 군더더기가 없고 따뜻하다. 누가 썼을까? 처음엔 오랜 세월 작가로 활동해온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였다. 위의 글귀를 쓴 사람은 문학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회사에서 33년 이상 근무하다가 최근에 정년퇴직한 차성환(60) 씨. 놀라웠다. 아마추어 수준의 문장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

소박하게 출간된 수필 모음집에서 차씨의 글을 발견한 이후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이력을 찾아봤다.

이미 재생백일장, 대구 매일신문 글짓기 대회, 한민족통일문예제전 등에서 필력을 검증받은 ‘숨은 문장가’였음이 어렵지 않게 확인됐다.

의문을 풀기 위해 길게 망설일 것 없이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대답 역시 그의 문장처럼 간명하고 명징했다.

“그렇지 않아도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다. 인터뷰를 제의해줘서 고맙다.”

차성환 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학업을 마치고 포항으로 와서 오랜 세월 한 직장에서 한 우물을 팠다. 모두가 알다시피 샐러리맨의 일상이란 얼마나 분주한가.

그렇지만 바쁜 와중에도 언제나 ‘기록하는 것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문학청년의 마음으로 문장을 수련해온 차씨.

중·고교 시절엔 밴드 ‘산울림’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며 가수를 꿈꾸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자녀들의 존경과 아내의 신뢰를 받는 성실한 직장인으로 살았으며,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임무에서 해방된 지금은 “하고 싶었던 외침, 내뱉고 싶었던 소리, 그리고 삶의 여러 에피소드를 글로 써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하는 차성환 씨다.

아래는 그가 자신의 삶과 글에 관해 털어놓은 숨김없는 소탈한 이야기다.

 

중·고교 시절 가수 꿈꾸던 소년, ‘포스코맨’으로 ‘기록하는 것의 소중함’ 지키며 한우물

재생백일장 대상·대구 매일신문 공모전 수상 등 굵직한 경력 쌓으며 수필 모음집 펴내

“후회는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 미래의 아픔… 나이와 환경에 맞는 ‘다움’의 삶 살고파”

-33년 넘는 세월 동안 한 직장을 다녔다. 포스코를 직장으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었는지.

△부산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다가 작은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다. 포항은 작은 도시이지만, 포스코는 분명 글로벌 기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포스코라는 브랜드와 함께 내 삶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재직 시 잊을 수 없는 추억은.

△홍보팀장으로 있을 때 도시 재생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적으로 시작한 ‘세탁소커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직장생활 중 내가 가진 역량 그 이상의 열정을 바친 귀하고 소중한 작품이다. 30년 넘은 세탁소를 지역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게 세탁소커피다. 지금도 그곳 사람들과 내가 찍은 사진이 걸려 있는, 언제나 가보고 싶은 공간이다.

-문학과는 무관해 보이는 직장에서 글쓰기를 지속한 이유는.

△기록과 남김의 습관이 있다. 기억의 한계를 알기에 무엇이든 기록해 남겨둔다. 자동차, 침대, 거실, 화장실 등 내 주변 곳곳에 조그만 수첩과 볼펜이 있다. 후배와 출장 갔을 때의 일, 아이들 키우며 겪은 기억과 추억, 아내와의 여행 등 모든 것들을 기록해 남긴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국 어느 순간 한 문장, 한 단락의 글이 된다.

-직장인으로 살아온 시간은 어떤 자부심과 상처를 남겼나.

△남편다움, 아버지다움을 실천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가족들 앞에서는 당당함을, 스스로에게는 자존감을 키워준 곳이 직장이다. 하지만 때론 조직의 누군가에게 잡혀 있다는 허탈감과 억울함도 있었다. 진실과 정의마저도 가족을 핑계로 외면해야 했던 마음의 상처는 지금도 흉터로 남아있다

-정년퇴직 후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설렘과 두려움이다. 계획은 언제나 미래의 시간과 가상의 현실일 뿐이다. 계획은 계획이다. 스스로 계획이라는 늪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거창함보다는 사소함의 일상을 즐기고 있다. 동네 골목길, 가보지 못한 조그만 카페 탐방 등 규칙적이어야 했던 일상에선 할 수 없었던 ‘내 마음대로의 시간 여행’을 해보는 게 흥미롭다. 이를 통해 직장인일 땐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는 중이다.

-글을 써서 많은 상을 받았다. 기억에 남는 상은.

△나는 글쓰기 공부의 한 방편으로 백일장을 꼽는다. 제시된 주제어로 2~3시간 만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는 긴장감과 설렘이 나를 매료시킨다. 2015년 재생백일장 대상과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으로 산문 부문 장원을 수상한 대구 매일신문 공모전 수상이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작가와 직장인 삶 중 어떤 걸 택할 것인지.

△둘 모두다. 직장인은 가정의 버팀목이다. 작가는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공감과 감동, 그리고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꼭 하나만 선택하라면 작가다. 조직의 누군가를 위한 거짓과 위선의 부끄러운 대가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내 문장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편백나무 숲 같은 편안함을 줄 것 같다는 환상이 늘 나를 깨어있게 한다.

-살아오며 자식들에겐 어떤 조언을 했나.

△건강을 강조했다. 도시와 문명의 발달로 우리의 삶은 자연과 점점 멀어져 간다. 이런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될 아이들이다. 생각도 못한 새로운 질병들이 생겨난다. 건강하지 못하면 꿈과 희망도 그저 꿈과 희망으로만 끝난다. 가능한 자연과 태초의 방식으로 건강함을 잃지 말라고 가르쳤다. 건강한 몸과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자식들이 나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 그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 아닐까.
 

글쓰기란 기록이고 남김이다. 사진이 시각적 기록이고 남김이라면, 글쓰기는 시청각의 기록이고 남김이다. 단어 하나만으로도 시간과 공간, 소리까지 느낄 수 있다. 아이 셋을 키우며 아버지가 쓰는 육아일기로 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글쓰기는 나와 누군가의 기록이며 남김이다. 기록과 남김은 추억과 회상의 도구로 기억되고 남겨질 것이다. 문학은 이러한 기록과 남김에 정갈함과 고급스러움이 더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기록이고 남김이다. 사진이 시각적 기록이고 남김이라면, 글쓰기는 시청각의 기록이고 남김이다. 단어 하나만으로도 시간과 공간, 소리까지 느낄 수 있다. 아이 셋을 키우며 아버지가 쓰는 육아일기로 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글쓰기는 나와 누군가의 기록이며 남김이다. 기록과 남김은 추억과 회상의 도구로 기억되고 남겨질 것이다. 문학은 이러한 기록과 남김에 정갈함과 고급스러움이 더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기록과 남김이 나만의 것이라면, 문학은 나의 것이며 또한 모두의 것이다.
 

-‘인간 차성환’이 그려갈 미래는.

△가장으로서가 아닌 가정과 가족의 일원으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조금은 얕아지고 얇아진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것들 역시 기록과 남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언제나 나이와 환경에 맞는 ‘다움’의 삶을 살아가려 한다. 할아버지다움, 시아버지다움, 장인다움의 삶을. 지금까지의 남편과 아버지다움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사람을 찾기보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주자. 후회는 내가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 내 미래의 아픔이다. 기억에는 한계가 있지만 기록에는 게으름이 있다’. 직장생활 하던 시절 강의나 교육 중에 자주 쓴 말이다. 직장인으로 33년 8개월을 보냈다. 거기서 남겨진 기록들을 문학적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하고 싶었던 외침, 내뱉고 싶었던 소리, 그리고 여러 에피소드를 내 글을 읽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꿈이 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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