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청하 ‘치유농장’ 가보니
작물 가꾸며 지진 트라우마 극복
최근 시장 규모도 가파른 성장세
코로나블루 이길 기회 활용해야

최근 코로나 등으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치유농업’이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포항시 북구 청하면 고현리에 녹색 힐링 공간인 ‘마음 치유농장’이 조성돼 있다.

지난 8일 포항지진 발생 후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불안과 불면 등에 시달려 ‘포항지진 트라우마센터’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는 고위험군 주민 14명이 이곳을 찾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사태마저 장기화하면서 이들의 정신적 피로도는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프로그램 진행 전 참가자들의 얼굴은 웃음기 없이 잔뜩 굳어 있었다. 자기소개 자리에서는 어색한 듯 다들 머리를 긁적였다.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됐다. 첫 번째 치료는 땅을 밟으며 자연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농장에 심어진 유채꽃과 라일락, 할미꽃 등을 바라보며, 바람에 흩날리는 꽃향기와 흙냄새를 맡았다. 이후 케일, 당근, 근대 등 10여 가지의 채소를 직접 심는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에 이들은 직접 흙을 만지는 것에 대해 다소 어색해했지만, 이내 ‘토닥토닥’ 땅을 만지며 정성스럽게 모종을 심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A씨는 “포항에서 살면서 내 손으로 직접 밭을 가꾸고, 농작물을 심어보는 작업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며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으니 복잡했던 내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 같고 온전히 나만을 사랑하며 나 자신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밭에서 자란 쑥을 캐는 작업이 이어졌다. 이들은 “수확한 쑥을 집에 가져가 ‘쑥버무리’와 ‘도다리 쑥국’을 해먹을 것”이라며 입맛을 다셨다. 어느덧 수업의 마지막인 자연 건강식과 농장 주변의 꽃들로 그동안 수고한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리고, 먹기 명상을 하는 시간이 진행됐다.

B씨는 “지진 발생 후 밖에 나가는 게 무섭고 집에 혼자 있으면 자꾸만 우울한 기분과 불안한 마음이 들어 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고 있다”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에는 우울한 생각을 할 틈이 없었고, 온전히 자연에 집중하며 나를 다독이는 시간을 가져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전했다.

‘치유농업’의 인기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11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해 34만여 명이었던 ‘치유농업’의 이용자는 해마다 늘어 2030년에는 39만 명, 2040년에는 42만 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24.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위에 달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치유농업’ 수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맞춰 ‘치유농업’ 시장도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2013년 1조6천억원에 불과했던 ‘치유농업’ 시장은 2017년에 3조7천억원까지 커졌다. 2021년 현재 ‘치유농업’ 시장은 이보다 규모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로 국민의 우울감이 커져가는 시점에서 ‘치유농업’은 심리방역을 위한 또 하나의 좋은 수단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치유농업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치유농업’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농진청은 ‘치유농업’이 생활 속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농진청은 특별시와 광역시 농업기술센터를 중심으로 치유 농장 기술지원과 프로그램 개발, 치유 농업사 양성과정 운영 등을 담당할 ‘치유 농업센터’를 오는 2025년까지 17개를 설립할 예정이다. 시·군 농업기술센터와 협력해 오는 2025년까지 전국에 체험농장도 500개를 만들 계획이다. 치유 농업사 양성을 위해 매년 5월 치유농업사 양성기관을 지정하고, 10월에는 자격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농업회사법인(유)소풍 서숙희 대표는 “전국적으로 치유농장이 많아진다면 그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이 시대에 작은 다독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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