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의 언동을 기록한 일성록에는 매년 마지막 날에 헌민수(獻民數)가 기록된다. 헌민수란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지역과 전국 8도의 호구 수와 남녀별 인구가 조사된 인구통계 기록이다. 특히 임금은 헌민수를 받는 날이면 임금이 직접 절을 하는 등 경건한 의식절차를 가졌다고 전한다. 이는 그해 조사된 백성의 수는 곧 나라의 근간이며, 임금이 받들고 존중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에서다.

헌민수를 존경의 대상으로 삼겠는다는 것은 지금의 주권재민 사상과 비슷하다. 당시 국가가 비록 왕권체제였지만 권력의 근원이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헌법에 명기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적 사고와 맥락을 같이 하는 내용이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과 같다”고 비유한 군주민수(君舟民水)가 바로 이런 개념이다. 백성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짚을 수도 있다는 말은 백성이 곧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늘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말을 잘 쓴다. 백성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위정자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면 민심은 언제든 지지를 거둔다. 정치인이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진보 20년 집권론’을 꺼냈던 더불어 민주당이 서울·부산에서 실시된 4·7 재보선에서 대참패를 당했다. 1년전 국회의원 180석을 건졌던 총선 결과와 180도 뒤바뀐 결과란 점에서 민심의 엄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민심은 영원하지도 않지만 국민을 섬기는 정치에 대해 배신도 않는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 사상이야말로 새롭지도 않지만 정치권이 똑똑히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