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br>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기독교 성서의 세례요한은 예수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난 유대의 선지자였다. 제사장 스가랴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요르단 지역의 광야에서 낙타가죽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살았다. 서른 살이 되던 해부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치며 갈릴리 요단강 가에서 세례를 베풀고 설교를 하였다. 예수도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과 부유한 상류층인 사두개인들까지 세례를 받으러 오자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가져오라’고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에 대해서도 준열하게 질책하다 감옥에 갇혔다. 헤롯은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따르는 무리가 많아 민란이 일어날 것이 두려워 죽이지를 못하다가,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춤을 춘 의붓딸 살로메가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요한의 목을 요구하자 쟁반에 담아 선물로 주었다.

문익환은 1918년 중국에서 태어난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다. 목회일 뿐만 아니라 신학대학의 교수이자 사회운동가, 통일운동가, 참여시인으로도 활동했다. 친구이자 사회운동가인 장준하의 의문사를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여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등 반독재 운동을 하다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재야 민주세력 결집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통일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는 당시 진보 기독교인들의 인식에 따라 김일성과 회담하고자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방북을 결행했다.

문익환 목사의 방북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문득 세례요한을 떠올리며 일말의 기대를 했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투신해온 그의 전력을 감안할 때 헤롯왕을 꾸짖은 세례요한처럼 동족살상 전쟁의 원흉이자 북한주민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종신 집권하는 희대의 독재자 김일성에게 준열한 질책이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순교의 자리를 찾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참으로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는 평양도착성명에서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일방적으로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말만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김일성을 만나 얼싸안고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배신과 분노를 넘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어떤 논리나 변명으로도 합리화 할 수 없는, 이율배반이고 자가당착이자 정신상태를 의심케 하는 일이었다.

북한은 세계최악의 세습독재 국가다. 그래서 유엔은 2003년부터 해마다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왔다.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수용소, 매춘, 영아살해, 외국인 납치 등 인권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의 보장을 촉구하는 것이 그 결의안의 주요 내용이다. 한국의 현 정권은 3년 연속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정의를 위한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는 정부가, 민주화 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한 정권이 정작 동족인 북한의 인권을 외면한다는 건 참으로 해괴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것은 상식과 정상의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