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br>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남도의 봄을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봄마중을 떠났다. 전남 강진읍의 옥정호에서 시작되어 임실~남원~곡성~구례~광양 배알도수변공원까지 이르는 약 160km의 섬진강 자전거길 종주 라이딩을 다녀온 것이다. 수시로 봄꽃이 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잎새가 돋고 싹이 틔어 연둣빛 초목이 일제히 생동의 기운으로 손짓하는 듯했다. 강진 인근지역에서는 벚꽃과 진달래가 한창이었었는데, 구례 300리 벚꽃길에선 살랑이는 바람 결에 꽃눈개비가 처연하게 흩날리고, 하류의 광양지역 둔치에는 만발한 유채꽃이 강물에 넘실거리는 봄꽃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어디 그뿐이랴! 들판에선 파릇한 보리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강둑으론 쑥을 비롯 온갖 풀들이 고개를 내밀며 생장의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에 맞춰, 아니 이미 한참 전부터 들녘에선 사람들의 봄맞이 손길이 분주했을 터, 밭갈이를 하고 거름을 내며 논물 관리를 하는가 하면, 산자락과 둔덕에서는 봄나물을 캐고 뜯는 손길들이 많아졌다. 청명이 지나고 곡우가 다가오니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선지 경운기나 트랙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들판 곳곳엔 일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진 것 같았다.

‘해마다 봄이 되면/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땅 속에서, 땅 위에서/공중에서/생명을 만드는 쉬임없는 작업/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조병화 시 ‘해마다 봄이 되면’ 중

봄날을 거닐며 산야를 둘러보면 무엇 하나 부지런하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다. 저마다의 생김새대로 꽃이 폈다 지고 제각각의 모양새대로 싹과 잎을 드리우는 현상은, 단순한 것 같지만 창조적인 일손이 빚은 부지런함의 소산이다. 풀 한 포기, 미물의 유기체에도 꾸준히 이어지는 노력 없이는 나타나지 않는 꿋꿋한 생명력이요 활기다. 이러한 부지런함이 모이고 쌓여 자연계의 생명과 순환이 유지되고 식물은 자라나며 새로운 변화와 성장의 기틀이 형성되는 것이다.

근면과 성실로 비견되는 부지런함은 개인의 성장과 발전, 도전과 성취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똑같이 시작하고 추구하며 노력해도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부지런함의 정도와 방향성이 차이 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농부가 땅을 일궈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과정에서의 땀과 정성 여하에 따라 결실과 수확이 달라지듯이-. 그러나 봄날에 모종을 심거나 가꾸지도 않고서 가을날에 결실이 없음을 후회(春不耕種秋後悔)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자연은 너른 들판에서 소리없이 가르치고 있다. 길 따라 물 따라 페달을 밟는 내내 향긋한 바람이 반겨 맞고 강물은 이따금씩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살다 보면 순풍으로 안도할 때도 있고 역풍으로 고난을 겪을 때도 있지만, 쉬지않고 흐르는 물(川流不息)처럼 한결 같은 부지런함으로 맞서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며 끊임없이 정진해야 함을 들려주고 있었다. 피고지는 꽃과 연초록 잎새의 나부낌, 물과 바람이 전하는 들판의 묵시 속에 봄처럼 더욱 부지런해야함을 두 바퀴에 되새긴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