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식이 높기로 소문난 양반 북곽 선생은 과부와 밀회를 즐기다 들통이 나자 줄행랑을 친다. 그러다 들판에 파놓은 똥구덩이에 그만 빠져 겨우 기어나오는 순간 눈앞에서 호랑이를 만난다.

북곽 선생 앞에 선 호랑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한마디 한다. “양반은 구린내가 심하게 나는구나.” 놀란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며 침이 마르게 범을 칭송하며 아첨을 떤다. 조선후기 실학자며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소설 ‘호질(虎叱)’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박지원은 소설 ‘호질’ 외에도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부도덕함과 타락, 무능함 등을 고발한 ‘양반전’과 ‘허생전’을 쓴 작가다. 자유롭고 재치 있는 문체로 당시 사회상을 잘 포착한 그의 소설은 서민계층에게 당연히 인기가 있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뼈대 있는 양반 가문 출신이 이런 부류의 소설을 썼으니 아마 평민들 입장에서는 통쾌하기가 그지없었을 것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양반계층의 무능과 비굴함을 비판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는 파격적이다.

겉으로만 착한 척하는 위선은 특정 종교에서는 최악의 중죄로 다뤄진다. 단테의 신곡에서 위선자는 겉은 금이지만 속은 납으로 된 무거운 옷을 입고 영원히 행진하는 벌을 받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공자는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사람 가운데 어진자가 적다고 했다.

정치를 하고 국가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위정자일수록 도덕적 완결성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그들이 국민의 환심을 싸기 위해 그럴싸하게 말을 꾸며놓고는 뒷전에서 딴 짓을 했다면 국민이 받을 배신감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김상조, 박주민 등 여당 실세들의 부동산 내로남불은 바로 소설속의 양반의 위선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