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경수필가
배문경
수필가

떡을 만든다. 쌀가루, 소금, 검은콩을 준비했다. 정확하게 그램을 맞춘다. 맵쌀가루를 채에 문질러 두 번을 내렸다. 쌀가루를 만지자 폭신폭신 카스텔라처럼 부드럽다. 오늘은 콩설기 떡을 만든다. 냄비에서는 서리태가 익는 중이다. 콩 색깔을 닮아서 물색도 검다. 다 익은 콩을 채에 한 번 내려 마른 수건으로 툭툭 쳐서 콩의 물기를 뺀다. 쌀가루에 소금을 적당히 뿌렸다.

평생교육원에 떡 만드는 과정을 등록했다. 열두 명을 뽑는데 이곳에 들어오기는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지만 운이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들뜬 마음으로 떡을 만든다.

찜기에 면포를 깔고 검은 콩을 촘촘히 깐다. 남은 콩과 쌀가루를 잘 버무려 가장자리부터 툭툭 치면서 빈틈없이 메운다. 다시 위를 평평하게 고른다. 그리고 대나무 찜기를 양손에 힘을 주어 안으로 민다. 그래야 떡이 익었을 때 찜기에 떡이 붙지 않는다. 그 사이 물이 끓으면 찜기를 올려두고 기다린다.

보이지 않는 바닥에 콩을 예쁘게 까는 이유는 떡을 꺼내 뒤집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된다. 안 보인다 싶어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다.

쌀과 콩이 빈틈을 메우듯 속이 꽉 차 뒤집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상대를 감동 시킬 따뜻한 품성이면 좋겠다. 그리고 친하다고 너무 붙어 있으면 얼마나 피곤한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오래 가는 방법이다. 여유가 필요하다고 콩설기 떡이 오늘 나에게 설법한다.

어릴 적, 동네 큰 잔치가 있으면 떡을 나눠먹었다. 떡을 얻어먹으려고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녔다.

우연히 들은 떡 타령이 재밌다. 정월 대보름 달떡, 이월 한식 송병, 삼월 삼진 쑥떡, 사월 팔 일 느티떡, 오월단오 수리취떡, 유월 유두에 밀전병, 칠월 칠석에 수단, 팔월 한가위 송편, 구월 구일 국화떡,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동짓날 새알시미, 섣달에는 골무떡이라 지역적 특징으로는 산중 사람은 칡뿌리떡, 해변 사람은 파래떡, 제주 사람은 감자떡, 황해도 사람은 서숙떡, 경상도 사람은 기정떡, 전라도 사람은 무지떡이다. 갑자기 떡 부자가 된 기분이다.

익은 떡 위에 큰 접시를 대고 뒤집자 콩이 눌러앉은 자리가 갖가지다. 적당한 거리, 촘촘한 것, 드문드문 놓여 제멋대로다. 다음에 떡을 만들 때는 큰 하트 속에 작은 하트 그리고 더 작은 하트를 만들어 내놓으리라. 세상에 대고 사랑한다고 모두 사랑한다고 떠들 생각이다.

난 오랫동안 떡을 좋아했고 만들고자 했다. 가까이에 떡 만드는 교육이 있는지 몰랐다. 떡을 찾아 헤맨 시간이 길었다.

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떡 방앗간을 했다. 6살 되던 해, 온 가족이 모두 방앗간에 매달려 하루 종일 떡을 만들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떡가루를 갈던 기계에서 불이 났다. 그 불은 엄청난 속도로 방앗간을 모두 삼켰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 불씨가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방앗간 옆 살림집으로 번진 불은 삽시간에 지붕을 태우면서 너울너울 춤췄다.

어린 내가 가족에게 끌려 나와 내의 바람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녀의 춤사위처럼 화려했다. 엄마는 자신의 모든 재산이 일순간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

그 후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오래도록 몸과 마음을 피폐화시켰다. 각자가 살아야 했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 떡을 만들고 싶어졌다. 떡을 만들면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떡이 가족이었다. 어린 내겐.

떡을 만들어 흰 접시에 놓고 보니 첫 작품치곤 훌륭하다. 가슴속에서 지난한 시간을 상징하던 방앗간, 불, 고통이란 단어들이 툭 하며 떨어졌다. 잘 했어. 내 마음이 나를 위로했다. 누군가의 가슴에도 이렇듯 위로가 되는 떡을 만들고 싶다. 떡은 사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