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용 숙
천 년을 불렀던 이름이여
천 년이 흘러도 침묵하는 이름이여
세상은 늘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가장 높고
가장 지엄한 이름이다
화려했던 옛 영화에 발이 묶인 지금
만일 내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을 꿈꾼다면
세월이 흐를수록 빛나는 이름이다
비 그친 오후
누렇게 물든 숲길을 걸으면
잘 다듬어진 가을초상처럼
길은 정갈하게 살아나고
빨갛게 물드는 화려한 침묵
잎 진 가지에 매달린
근육질의 서사시를 본다
천 년의 시간을 읽는 시인을 본다. 화려했던 왕국의 부귀영화가 이제는 쓸쓸한 계절의 빛 속에서 낡아가지만, 신라 천 년의 아득한 시간들, 빛나는 영웅들, 지고지순했던 민초들의 이름들을, 파란만장했던 서사시를 뜨겁게 호명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