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김정은 체제 하의 노동당 8차 대회는 1월 평양에서 끝났다. 연이어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새로운 각료를 인준했다.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경제 5개년 계획의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북한 경제의 ‘자력갱생(自力更生)’원칙을 선포했다. 이 원칙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북한 선대 지도자들도 외쳤던 구호일 뿐이다. 김일성도 주체사상에서 경제의 ‘자립’을 강조했고, 김정일 역시 경제 강국 건설을 인민들의 자주적 역량에 두었다. 북한 경제가 외세에 의존치 않고 자력으로 살아나겠다는 포부는 좋지만 그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우선 북한 경제는 자력으로 소생하기 힘들 정도로 침체해 있다. 과거 어느 시기 북한 여러 곳곳을 돌아본 본 적이 있다. 경제의 토대인 사회 간접자본(SOC)은 어느 곳이나 보잘 것 없었다. 북한의 산들은 대부분 민둥산이고 비포장 도로에는 소달구지가 다녔다. 집단 농장의 옥수수는 메말라 버렸고, 공장 굴뚝에는 연기가 보이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국내 총생산(GDP)은 세계 20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에 대한 충성이 지속되는 것 만해도 이상한 일이다. 북한에서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될 때 경제의 자력갱생은 사실상 어렵다.

북한 당국은 이를 타파하려 대외 개방을 시도했다. 김정은 등장 이후 19개의 국가 경제 특구가 설치됐다. 함경도에서부터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해안을 따라 경제특구를 선포한 것이다. 이러한 경제 특구에는 외국의 투자가 있어야 개발이 보장된다. 그러나 외국의 투자는 성사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도 투자할 여유가 없고 소수의 중국 자본이 라진 선봉에 투입되었을 뿐이다. 북한이 선포한 항금평 특구에도 중국의 투자는 없다. 한국 등 서방의 투자가 없는 북한 경제의 자력갱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북한이 자력으로 내수 경제를 일으킬 수도 없다. 북한 폐쇄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과감한 경제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김정은은 취임 후 집단 농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개인의 가족 영농까지 허용하고 소토지의 개인 불하도 단행했다. 불 꺼진 국영 공장을 개인에게 임대하기도 했다. 북한의 농공업의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력과 인프라가 부족한 북한 땅에서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관개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북한에서 자연 재해는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다.

북한 당국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개혁·개방을 시도해야 한다. 북한은 현재의 중앙 집권적 통제경제만으로 현상유지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로부터의 개혁·개방에는 성장과 체제 붕괴라는 모순적인 딜레마가 따른다. 한편 북한은 시장 경제의 확대에 따라 주민들의 의식도 크게 변하고 있다. 탈북 주민 3만5천여명은 이미 남한에 정착해 있다. 북한 당국은 소련의 개방·개혁 과정의 체제 붕괴 현상을 여실히 보았다. 이것이 김정은이 과감히 개혁과 개방을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자력갱생은 하나의 선전 구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