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人
▒ 소목장 중요무형문화재 엄태조 명인

집중해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엄태조 명인.
집중해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엄태조 명인.

나무는 살아서 천 년을 살고 죽어서 또 천년을 산다. 살아서 그 푸르름으로 사람들에게 맑은 공기와 그늘을 주고 죽어서는 주택의 기둥과 마루, 장롱 혹은 반닫이가 되어 또 그렇게 도움을 준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 선한 숨결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며 나무는 수호신처럼 인류와 생을 함께 한다.

흔히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목수(木手)라고 한다. 14살부터 곤궁한 살림을 도우려 목수 일을 배운 사람이 소목장 중요무형문화재가 되어 60여 년을 나무와 함께 살았다. 엄태조 명인을 팔공산 자락에서 만났다. 당초문 통영반, 오동 의걸이장, 먹감약장, 반닫이, 권수정업왕생첩경, 대명다라니경 등, 이름도 생소한 전통목공예를 만들며 한 생애를 보낸 분을 만나면 가장 먼저 손을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얘기를 듣느라 잊었다. 명인은 나무를 만지고 사는 목수도 대목장(大木匠)과 소목장(小木匠)으로 구분된다며 말문을 열었다.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목수(木手)라고 한다
14살부터 목수 일을 배운 사람이 소목장 중요무형문화재가 되어 60여 년을 나무와 함께 살고 있다
전통공예에 쓰이는 나무 중 소나무는 향기만 좋은 게 아니라 무늬가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느티나무도 무늬결이 아름답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의 전통가구를
예술품으로 보는데 우리 가구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목장과 소목장의 차이가 뭐예요?”

“건물의 전체를 짓는 장인을 대목장이라 하고, 건축물의 치장이나 실내 디자인, 창호나 장롱, 궤함 등의 세간들과 가마, 수레처럼 생활도구를 만드는 장인을 소목장이라고 합니다.”

요즈음에는 모든 기능이 기계화 되고 분업화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소목장이 잔일까지 다 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전통가구가 장인들에 의해 여전히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통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우리의 나무로, 온전히 우리나라 전통의 공법으로 수작업을 해야 것이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전수관 없는 곳이 전국에 세 곳인데 그 속에 대구가 포함되어 있다고 명인이 한탄을 하신다. 무형문화재 전수관을 만들어달라고 청와대에 청원서까지 넣었는데, 정부에서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응답했건만 정작 시에서는 예산이 없어서 못한다고 잡아떼더란다. 전국에 세 명뿐인 소목장 인간문화재가 대구에 있는데도 사정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언제 어떻게 이 일을 시작했는지 살아온 얘기 좀 해주세요.”

“아버지가 맞춰준 지게를 지고 천수답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짓다 집안사람을 따라 가서 목공소에 취직했어요.”

일을 가르치던 목수가 그에게 빗자루를 주며 마당을 쓸라고 했다. 흙의 이음새가 없도록 반듯하게 쓸어야 한다는 말에 몇 달 동안 마당만 쓸었다. 왜 마당만 쓸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목수는 대패질을 비롯한 모든 일이 반듯해야 한다며 빗자루 자국을 지우고 마당을 한 폭의 천인 듯 쓸어보라고 했다. 그 목수는 어린 제자를 자식처럼 먹여주고 재워주며 목수의 마음가짐을 먼저 가르친 것 같다. 소년은 만 3년을 거기 머물다 다른 가구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돈을 조금 벌어서 귀향한 후, 대구의 골동품 가게로 옮겨 일을 배웠다. 골동품을 수리해서 수출하는 건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같은 방식으로 새 물건을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국전 급에 해당하는 ‘전수공예’라는 대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길이 있다는 걸 알고 다시 서울로 갔다. 전통기법을 제대로 익히면 인간문화재도 되고 무형문화재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꿈과 희망을 주었다.

소목장 인간문화재 55호 강대규 명인을 만난 것이 그 즈음이었다. 강대규 명인 밑에서 소목장의 전통기법을 전승 받으며 차근차근 일을 배웠다. 전수공예전에 작품을 출품하려니 디자인을 그려 오라고 했다. 디자인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 고민하며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데, 나무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가 꼭 가구디자인 같다고 느낀 순간 ‘아! 바로 저거다.’ 하는 혜안이 열렸다. 눈 감고 소나무를 생각하며 그리니까 죄다 그려졌다. 그때부터 명인은 사진을 보며 디자인 그리는 연습을 했다.

전수공예전 작품 출품을 앞두고 날마다 갓바위를 오르내렸다.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에 전념한 정성이 통했는지 마침내 ‘전수공예전’에서 입선했다. 대구의 첫 번째 소목장 전수 입상자가 되었다. 인간문화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소목장 인간문화재가 되는 과정이 궁금해요.”

“대구, 전주, 서울에 소목장 인간문화재가 한 명씩 있습니다.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죽어야 다시 인간문화재를 뽑는데, 3년 동안 피 마르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어째서 인간문화재가 3명뿐이냐고 물으니, 예산이 없어서 인간문화재 관리가 어렵다며 겨우 전통의 맥만 잇는 정도로 유지한다고 한다. 말이 좋아서 전통이고 인간문화재이지 경제적으로 곤궁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한탄을 했다.

“전통공예에 필요한 나무가 따로 있어요?”

“소나무, 오동나무, 느릅나무, 느티나무, 괴목 등을 주로 많이 쓰는데, 원목이 지닌 나뭇결의 자연미를 살리는 게 특징입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나무의 문양이 아름답고, 특히 소나무는 기름성분이 많아서 따로 칠을 하지 않아도 자주 만지면 반들반들해진다고 한다. 예전 고가구를 보면 특히 소나무 오동나무가 많다. 소나무도 무늬결이 있고 곧은결이 있는데, 예전 선비들이 화려한 것보다 주로 곧은결을 선호했더란다. 소나무는 향기만 좋은 게 아니라 무늬가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느티나무도 무늬결이 아름답다. 명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무로 우리나라의 소나무를 손꼽는다. 그러면서 나무가 저렇게 좋으니 흙은 또 얼마나 좋겠느냐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산 도처에 보약이 깔려 있다고 허허허 웃으신다.

“나무는 오래 마르면 틀어지는데 고가구는 어떤가요?”

“전통가구는 원목으로 못 하나 없이 짜 맞추기 때문에 대를 이어 쓸 수 있어요. 백 년이 지나도 풀어서 다듬으면 새것처럼 쓸 수 있어요.”
 

외국 사람들은 우리의 전통가구를 예술품으로 본다며, 그것은 우리 가구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같은 물건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무는 아무리 건조해도 계절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기 마련인데 못 없이 짜 맞춘 전통가구는 스스로 늘어나고 줄어드는 속도에 몸을 맞추기 때문에 백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전통목공예 외에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문화재 보수를 많이 하고 있어요.”

엄태조 명인은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수를 13년째 계속하고 있으며, 용문사 대장전 윤장대를 해체 보수하고, 은혜사 백흥암 극란전 수미단 보수, 장춘사 대웅전 수미단 제작, 북지상사 비로전 수미단 제작 등, 국가지정 보물의 보수공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 외에 종갓집 보수공사를 맡기도 한다. 이름만으로도 위엄이 주어지는 일을, 대구경북이 낳은 인간문화재 엄태조 명인이 만지고 다듬는다고 생각하니 무한정 믿음이 간다.

“팔만대장경 판각보수의 경험을 좀 들려주세요.”

“목판 선반을 판각이라고 하는데 요즘 말로 하면 책꽂이 같은 것입니다.”

판전 안에는 벌레도 없고 습기도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지렁이나 벌레가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정밀한 공법을 거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판각 아래를 1미터 깊이로 파고 맨 아래 숯을 깔고 그 위에 소금을 뿌려서 강회를 하는데, 그 과정을 세 번 거듭한다고 했다. 맨 위에 마사토를 섞어서 강회를 해두는데, 다음날 보면 표면에 하얗게 분이 덮여 있다며 스님들이 아침마다 그 분을 쓸어낸다고 했다.

강회에는 벌레를 방지하는 성분이 있어서 수백 년이 지나도 깨끗하다고. 흙도 먹고 싶은 영양분이 있는데 800년이 지났으니 흙이 허벅허벅 할 거 아니냐며, 파내고 새 흙을 넣어서 똑같은 방법으로 복원한다고 했다. 판각 역시 못 하나 없이 짜 맞추었는데도 팔만대장경의 육중한 무게를 이고도 끄떡없다는 명인의 설명에 자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나무와 나무를 잇는 방법은 어느 나라도 따라할 수 없는 우리 전통의 방식이라고 기꺼워했다. 판각의 부서진 부분은 보수를 하고, 휘어진 부분은 똑바로 만들고, 없는 것은 채워 넣으며 원형대로 복원을 한다고. 흙을 다지는 방식도 기계로 하면 층이 생겨 매끈하지 않기 때문에 방망이로 일일이 두들긴다고 한다. 방망이로 두들겨야 매끈하고 단단해진다는 보수 공법까지 그야말로 수작업이었다.

60여 년간 목공예의 전통을 지켜온 엄태조 명인은 800평이나 되는 영천목공예사업협동조합에서 제자들을 키우고 있다. 기능인들이 제대로 일할 여건을 만들고 싶다며, 장인들과 후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작업하고 기술을 전수하는 발판이 중요하다고 했다. 전통문화를 살리는 길은 전통의 맥을 잇고 기능인을 발굴 양성할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주어져야 하고, 전승자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전통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명인이 따끔하게 한마디 한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