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충택논설위원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주 사퇴하면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이 나라 권력자들이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책사업이나 정부예산 배분, 인사를 할 때 지역과 이데올로기를 우선시했다. 국민을 양 진영으로 쪼개 한쪽 진영을 자원 배분에서 배제시키며 다른 한쪽을 응집시키는 결정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대구·경북은 철저히 소외당하는 쪽이었다. 그 결과 현재 정부 고위관료나 공기업, 공공기관 임원 중에서 대구·경북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국회 예산심의 때마다 ‘TK패싱’이라는 소리도 유행가처럼 나온다. 국회가 ‘가덕도 특별법’을 통과시키면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은 휴짓조각 취급을 하자 부산 국회의원조차 두고 볼 수 없었던지 “노골적인 지역차별을 중단하라”고 했다. 지난해 봄 이 지역이 코로나19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친여성향 한 교수는 “대구는 독립해 일본으로 가라”는 기막힌 소리를 하기도 했다. 요즘도 나는 이 말을 떠올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현 정권의 대구·경북에 대한 지역차별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진행돼 ‘정부가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어색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이 현직 검찰총장 마지막 날 대구검찰청을 방문해 ‘대구가 친정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대구시민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

윤 전 총장이 대구를 다녀간 후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최근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그의 얘기를 화제로 삼을 정도다. 내년 대선에서 윤 전 총장이 주도적으로 나서 정권교체를 이루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민심이 주류인 것 같다. 윤 전 총장은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하면서 이제 자연인 신분이 됐다. 현재 서울 집에 머물며 조용하게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 선거 개입 논란을 피하기 위해 당분간 정치적인 행보를 자제할 것이란 분석이 있지만, 국민의 힘 내부에서는 충청권 의원을 중심으로 ‘윤석열계’ 세력화가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윤 전 총장은 서울출신이지만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충남 공주출신이다.

대구·경북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이 현 정권 출범과 함께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돼 박근혜 정권 수사의 책임을 맡은 것을 두고 ‘TK에서 넘어야 할 산’이라는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 논리는 내년 대선에서 또다시 박근혜 탄핵을 대선후보 판단의 변수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제는 박근혜 탄핵에는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이미지가 유령처럼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차기 대선에서도 대구·경북이 이를 이슈화 할 경우 전국적인 외톨이 신세가 될까 걱정된다. 윤 전 총장이 현 정부의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조국일가에 대한 수사를 강행했듯이, 검찰이 이전 정부의 권력 비리를 수사한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