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하면 떠오르는 것은 뭣보다 3·1절. 그러고 나면 그 다음날 운동장에서 ‘조회’하던 옛날 광경. 그 다음엔 봄이 왔는데도 늘 추웠었다는 기억. 그때는 3월에도 손발이 시렸다. 그러니까 3월 하면 아직도 ‘맹렬하게’ 남아 있는 추위를 뚫고 학교에 가서 조회를 하고 새 교실에서 새 책을 받고 새 친구들과 왁자지껄, 우당탕탕 놀아제껴야 제 맛이었다. 대학이라서 수업이 없는 날도 있다. 월요일 하고 수요일에 수업이 있는 과목에 3.·1절이 월요일 차례가 되었다. 화요일을 건너뛰어 수요일, 3월 3일이 첫 개강날이었다.

‘어김없이’ 며칠 전에는 봄을 시샘하는 늦겨울비가 제법 내려 3월을 맞을 준비는 다 된 것도 같았는데, 캠퍼스에 학생들이 ‘없다’. 이번 학기도 지난 학기, 지지난 학기처럼 ‘줌(zoom)’으로 수업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겨울방학중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 한산한 캠퍼스를 가로질러 연구실 있는 건물로 향한다.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건물들은 죄다 ‘자물쇠’가 채워졌다. 신분증, 전자 ID카드가 없으면 문을 열 수 없다. 바로 옆에 시스템 관리팀을 부를 수 있는 벨이 있지만 ‘규정’이라서 절대로 열어줄 수 없단다. 신분증을 잊어버린 날은 다른 사람이 드나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사람이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려면 먼저 ‘줌’ 어플로 ‘새 회의’라는 것을 개설하고, 그러면 생성되는 회의 ‘주소’를 학생들에게 문자로 전송해 주어야 한다. 수업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이 주소를 따라 단체 ‘회의실’에 입장하게 되고, 그러면 이것이 인터넷 수업이 된다.

겨울 내내 연구실을 정리한다, 한다 해놓고 그대로 3월을 맞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요즘 학생들은 ‘줌’으로 자기 사는 방의 풍경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는데, 나 또한 지금 내 얼굴 뒤에 ‘가상배경’을 깔아놓고 수업을 해야 할 판이다.

이번 학기부터는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아 미리미리 출석부도 출력해 놓고 강의계획서도 꺼내서 첫 개강 수업 준비도 하고 일찌감치 ‘줌’ 수업 주소도 학생들에게 전송한다.

학생들 명부를 보는데 학번이 ‘2020’인 학생들이 많다. 작년 코로나 ‘개시’ 시절에 대학에 들어와 올해로서 2년째 ‘줌’ 수업으로 공부하고 캠퍼스는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찾아오는 ‘운 나쁜’ 친구들이다. 더 잘, 더 자세히 수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앞으로 코로나가 물러가도 대학이 이런 메커니즘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인다.

결혼식, 장례식은 확실히 그럴 것 같은데, 과연 일상은? 간단치 않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져온 충격이 참으로 큰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