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수<br>수필가
강길수
수필가

우리 두 새싹, 태극이와 광복아!

너희들 만난 지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또 보고 싶구나. 너희 아빠들 자랄 때 보다 우리 새싹들이 더 보고 싶으니,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할아비와 할미에겐, 너희들이 가장 소중하고 큰 행복이란다. 지금은 세상이 어찌 변할지 모를 혼돈시대다. 하여, 우리 새싹들에게 무언가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될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련다.

일주일만 있으면 3월이 되는구나. 봄이 온다는 뜻이지. 입춘과 우수도 지났으니 지금도 봄일 테지만, 경험상 3월부터 봄이라 하고 싶다. 할아비 유년기의 봄은 아직도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다. 바로 새싹이란다. 고향 산골에 3월이 오면, 앞산 뒷산의 눈이 녹아 개울마다 도랑마다 맑은 물이 졸졸졸 흘렀지. 우리 집 앞 양지바른 밭둑 이곳저곳엔, 연둣빛 새싹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랐고…. 어린 할아비는 매일같이 새싹들을 만지기도 하며 노는 게 마냥 즐거웠단다.

오늘, 할아비는 너희 할미와 텃밭에 갔었다, 지난 늦가을과 초겨울에 심은 양파와 마늘이 궁금해서였지. 전에 안 보이던 마늘 새싹이, 메말라 보이는 이랑에 다문다문 너희들 손가락처럼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니겠니. 할미는, “와! 마늘 새싹 났구나! 아이고, 귀여운 것들….” 하며 뛸 듯이 좋아하였다. 할아비는 연두색 마늘 새싹을 보는 순간, 손으로 만져보며 꼭 너희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옛날, 고향에서 좋아했던 봄 새싹의 기억이 덩달아 되살아나더구나. 텃밭 가꾸기를 처음 시작할 때, 비록 적게 거두더라도 할아비 유년 시절 보던 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단다. 즉, 비닐과 농약은 쓰지 말고 해롭지 않은 거름만 쓰자고 말이다. 심은 씨를 하늘이 길러주는 대로 받아먹어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지. 사람들은 이런 할아비의 생각을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땅이 작을수록 농약과 비료, 비닐도 써서 수확량을 늘려야지 배부른 소리’라고 말이다. 하긴 텃밭이 크고 살림살이가 밭에 매여 있다면, 할아비도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

우리 새싹들아!

무엇보다, 너희들에게 유해물질 없는 먹을거리를 조금이라도 먹이자는 마음이 앞섰단다. 올여름 네 돌을 맞을 태극이와, 올봄 두 돌이 올 광복이가 할아비 할미가 노지재배로 거둔 푸성귀를 먹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지. 물론 잘 살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생태계를 희생하며 이룩한 지구촌의 현대 과학 문명이, 되레 생명이 살기 어려운 생태계를 만든다는 자각도 뒤따랐단다. 오늘날 점증하는 기후변화는, 푸른 별 지구가 사람들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경고하는 울부짖음이 아니겠니?

서구(西歐)에서 부는 웰빙(well bing), 로하스(LOHAS), 슬로시티(slow city) 같은 운동은 지구의 경고에 대한 사람의 응답이라 여긴단다. 할아비가 어린 날 경험한 우리 농촌은 그야말로 친 생태적 삶을 살았지. 사람과 가축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기에, 하늘이 주는 자연 먹을거리를 얻어먹으며 소박하게 살았으니까 말이다. 유불선(儒佛仙) 사상이 어우러진 전통 우리 사회는 그 자체가 웰빙이요, 로하스며, 슬로시티였단다. 불행하게도, 지구촌 생태 운동은 아직 역부족으로 보이는구나.

할아빈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 기후변화란 원죄’를 너희들에게 물려주게 된 기성세대로서, 그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구나. 지구촌이 작년 초부터 겪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염병 대유행은 그 벌이 아닐까 싶어 겁이 난단다. 정치인들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은 안중에도 없이, 편 가르기만 일삼고 있다. 어찌 한 나라의 국민이 내 편만 있고, 내 편만 옳겠니? 나랏빚이 산더미처럼 늘어나도 퍼줄 생각만 하는구나, 나라 곳간을 제대로 챙기는 정치인과 관료는 안 보인단다. 불안한 나라 앞날을 생각하면, 할아비는 우리 두 새싹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

우리 새싹들아!

하지만 앞으로 세상이 더 암울해지더라도 너희들은 절망하지 말고, 희망으로 살아내기를 바라고 믿는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준다고 역사가 가르쳐 주기 때문이란다. 애국가에도 있듯이, 하느님은 우리 새싹들과 우리나라와 푸른 지구를 꼭 지켜주고 도와줄 테니까. 봄, 여름, 가을을 다 품은 새싹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