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경북의 언택트 관광지를 찾아
⑨ 문경새재와 돌리네 습지 너머엔 뭐가 있을까?

문경 생태미로 공원.

드물게 ‘빼어난 경관’이 그 지역의 명칭보다 유명한 경우가 있다. 문경시의 ‘새재’(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 사이에 있는 높이 1천26m의 고개)가 그렇다. 아찔한 바위산과 울울창창한 숲이 어우러진 새재의 풍경은 ‘문경’이란 도시의 명칭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4년 전 한 번, 지지난해 또 한 번 문경새재를 찾았다. 여름엔 시원스런 그늘을 만들어 선물하는 것으로 관광객과 문경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오만가지 꽃이 피는 봄이면 그 향기가 깊은 골짜기까지 진동하는 곳.

여행하는 이들이 드물어 조용한 겨울에도 더없이 낭만적이고, 단풍놀이 즐기는 중년남녀들에겐 가을의 문경새재가 사랑받아 왔다. 사계절 가리지 않는 매력 가득한 여행지.

‘한국 지명 유래집’은 문경새재의 다른 이름인 조령(鳥嶺)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큰 길 이었던 ‘문경새재 도립공원’
박물관·휴양촌 등 관광명소 되고
다양한 동식물 731종이 서식하는
‘돌리네 습지’엔 수달·담비 뛰놀고
꽃향기 ‘솔솔’ 힐링산책으로 최고

“조선시대 영남 지방에서 서울에 이르는 영남대로에 위치한 마지막 고개다. 일제강점기에 이화령에서 충주 수안보로 통하는 3번 국도가 뚫린 후 새재 길은 옛길로 남게 되었다. 1981년 이 지역을 도립공원으로 지정했다. ‘고려사 지리지’에선 조령을 초점(草岾)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후 경상도에서 서울로 통하는 요충지인 조령에 1관문인 주흘관, 2관문인 조곡관, 3관문인 조령관이 설치됐다. 국방의 요충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조령은 우리말로 새재다. 지명의 유래는 여러 가지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에서 왔다는 설이 있고, 억새가 우거진 고개라는 뜻에서 연유했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 생긴 고개’이기에 새재라고도 한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은 문경시가 가장 앞서 내세우는 지역 최고의 관광지다. 실제로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문경을 여행하면서 새재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팥소가 빠진 찐빵을 먹는 것처럼 싱겁다.

기자 역시 문경시를 찾을 때마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에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았다. 초여름엔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는 호사를 누렸고, 가을엔 형형색색 단풍에 마음을 뺏겼다.

하지만, 여름과 가을의 문경새재는 봄날의 문경새재가 지닌 위상을 따르지 못한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 조선시대엔 한양으로 가는 큰 길… 지금은 관광 명소

가까이에서 만나는 진달래는 그 진분홍 색채를 관능적으로 뽐내고, 불어온 따스한 바람에 놀라 저 먼 산에 화들짝 핀 봄꽃들은 이름을 다 알지 못해도 존재 자체만으로 보석처럼 빛난다.

풍치가 이러하니, 문경이 어찌 ‘새재’를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자랑하지 않겠는가? 문경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엔 보다 상세한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관한 정보가 소개돼 있다. 아래 인용한다.

“한국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경계를 이룬다. 죽령을 지나 대미산, 포암산, 주흘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청화산, 속리산으로 이어지니 이게 바로 소백산맥이다. 삼국시대와 고려 때엔 문경 관음리에서 충북 중원군 수안보로 통하는 큰길인 계립령이 있었고, 문경 각서리에서 괴산군 연풍으로 통하는 작은 길 이화령은 1925년 개척돼 지금의 국도3호선이 됐다. 옛날엔 이화령과 충북 괴산으로 연결된 불한령, 문경군 농암에서 충북 삼송으로 다니던 고모령 등이 있어 신라와 고구려,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었다. 이곳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조선시대의 가장 큰 길이었고, 지금도 원터, 교귀정, 봉수터 등이 남아 있다. 조령 길의 번성을 말해주듯 주변엔 관찰사와 현감의 공적을 새긴 불망비와 송덕비 여러 개가 존재한다. 지금은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된 관광 명소다.”
 

생물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문경 돌리네 습지.
생물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문경 돌리네 습지.

◆ 봄날 언택트 여행지에서 떠올린 ‘사라지지 않는 것들’

드넓은 공간에서 즐기는 새재에서의 산책은 코로나19 시대가 요구하는 ‘언택트 관광’에도 잘 어울린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고, 가족, 연인, 친구가 함께 하는 봄날의 소박한 피크닉이 가능한 곳이 바로 문경새재 도립공원. 볼거리도 적지 않아 공원 내에 자리한 옛길박물관, 자연생태박물관, 힐링 휴양촌, 오픈세트장, 도자기박물관을 돌아보는 즐거움도 크다. 그 가운데 추천하고 싶은 건 ‘문경 생태미로 공원’이다.

문경시 관계자는 이 공원을 “자생식물원 형태로 유지돼 오던 것을 도자기, 연인, 돌, 생태를 주제로 한 4개의 미로와 전망대, 산책로, 연못 등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라고 알려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했던 긴 겨울이 가고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온 봄이 푸른 희망의 노래를 속삭이는 생태미로 공원.

여기서 기자는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을 빼어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설파한 이영진(65) 시인의 시 ‘풀들은 늙지 않는다’를 조용히 읊조렸다.

집들은 스스로 허물어져 빈자리를 만들었어
무너지는 것들은 제 속을 비우고
대지를 향해 몸을 맡겼지
기울어진 토방마루를 지나
뒷산 이름 없는 묏등으로 가는 길

구절초며 흰 찔레꽃
꽃 피는 모든 것들의 의지가 눈부셨어
그대가 길 떠나간 뒤
사람의 온기가 바람에 닳아 식어가는 동안
등 뒤에 남은 것들의 쓸쓸함은 깊어만 가고
무너진 빈자리마다 풀이 자랐지
바람이 불 때마다 들렸어

지친 발걸음을 인도하던 그대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
우리는 세계를 떠돌며
끝내 자라지 않는 뿌리의 통증을 견뎌야 했어
땀과 눈물의 자리에 함께 서 빛나던 소금 같은 사내들
더불어 공유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대 떠도는 생애보다 짧은 저녁노을이여

노을은 떠온 산이 붉어 와도
아무도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다가오는 어둠 앞에서도
끝내 늙지 않는 풀들만 푸르를 뿐
그대 썩지 않는 예언이여
오늘 누군가는 또 집을 떠나야 하리라.
 

문경시가 자랑하는 ‘언택트 관광지’ 문경새재 도립공원.
문경시가 자랑하는 ‘언택트 관광지’ 문경새재 도립공원.

◆ 문경 돌리네 습지,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못지않은 풍경

3월 봄바람에 들뜬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좋은 시 한 편을 떠올린 후엔 문경의 또 다른 ‘비대면·비접촉 관광지’ 돌리네 습지로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돌리네(Doline)’란 석회암지대에 생성된 접시 모양의 움푹 파인 땅을 지칭하는 것이다. 습지 형성이 어려운 지형적 특성상 국내에선 문경이 유일한 돌리네 지형이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건 돈 주고도 하기 힘든 호사.

혼자서 고독을 곱씹으며 걷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과 함께라면 웃음까지 선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속을 재빠르게 헤엄치는 수달과 담비를 보며 깔깔거리지 않을 애들은 없을 테니까.

돌리네 지형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는 동유럽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Plitbice National Park)일 것이다. 기자는 10년 전 그곳을 다녀왔다. 어땠냐고? 물론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문경의 돌리네 습지는 플리트비체와는 다른 매력으로 관광객을 반길 것이다. 기자의 견해를 뒷받침하듯 문경시 관계자가 말한다.

“좁은 면적임에도 731종의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이 돌리네 습지다. 초원 생태계와 육상 생태계가 공존하는 이곳에선 꼬리진달래, 낙지다리, 들통발, 쥐방울덩굴 등의 희귀식물과 만날 수 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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