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바야흐로 겨울 졸업 시즌이다. 학교를 오가다 보면 학생들이 일주일 내내 졸업 가운을 입고 ‘삼삼사사’ 모여 사진들 찍은 풍경을 본다. 다섯 명 이상은 아직 모일 수 없으니 삼삼오오오가 될 수 없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2월의 졸업 시즌은 닥쳤다. 대학 전체 차원이나 단과대학 차원에서 정식으로 졸업식을 가질 수 없는 코로나 시절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축하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아하, 이게 좋겠구나 했다.

학과 홈페이지에 졸업생 명단을 띄워올리고 “여러분의 뜻 깊은 졸업을 축하합니다!” 문구 정도로 분위기를 살리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조교 선생님도 이야기를 듣고는 그거 좋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다음날이다. 학과에서 만난 조교 선생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졸업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학생들도 있을 수 있어, 자칫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졸업생 이름을 다른 곳도 아니고 학과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을 꺼려 하는 학생도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때는 물러서는 것이 좋다. 개인의 인격권과 프라이버시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강조되는 요즘 졸업도 ‘개인정보’라는 인식에 맞서 좋을 것이 없다. 또 엄밀히 말하면 확실히 개인정보인 것은 맞으니까. 다시 또 생각한 것은 학과로 통하는 외벽에 졸업 축하 플래카드를 써붙여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도 꺼내지 못했다. 요즘 학교 전체적으로 플래카드 ‘단속’이 여간 심한 게 아니어서 일일이 허락받아야 할 뿐더러 부착 지점도 까다롭게 제한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해서, 코로나 ‘시즌’의 졸업생들을 축하해 주려던 아이디어들은 무위로 돌아갔다. ‘축하의 말’이나 ‘달랑’ 올려 드리고 기념품을 준비하는 것으로 졸업 시즌을 때우는 셈이 되었다. 옛날에는 사회가 이런데 졸업식이 무엇이냐고 졸업식 거부까지 했건만, 이제 그런 인식은 아예 사라졌다. 학교 학생들은 학교 마크가 찍힌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고 졸업식은 거의 모든 학생들이 참석하는 중요 행사가 되었다. 코로나 시절은 이렇게 ‘정상’으로 되돌아온 졸업식이 없는 졸업 시즌을 만든다. 그래도 교문을 들어오고 나가면서 보는 졸업생들의 표정은 밝다.

내가 혹시 졸업식 축하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글쎄, 혹시 대학 시절 이후로 코스모스 졸업밖에는 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원까지 세 번 졸업을 했지만 매번 가을에만 학업을 끝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졸업 가운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어서 코로나 염병이 물러나야겠다. 학생들이 학업 마치는 보람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