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은 오고… 가는 겨울 새 옷 입고 날 반기네
그래도, 봄은 오고… 가는 겨울 새 옷 입고 날 반기네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1.02.23 20:24
  • 게재일 2021.0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19 시대
경북의 언택트 관광지를 찾아
⑧ 운문사와 공암풍벽이 반기는 봄날의 청도
봄이 완연한 때의 청도 운문사 풍경.

기어코 왔다. 봄이다. 그러나, 이 봄이 마냥 반겨 맞을 귀한 손님 같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에선가?

이미 수천 년 전 이런 노래가 세상을 떠돌았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이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몹쓸 오랑캐들이 사는 땅에는 향기로운 풀도 아름다운 꽃도 피지 않으니, 봄이 왔지만 진정한 봄처럼 느껴지지 않는구나’라는 뜻.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호지(胡地)’는 오랑캐(야만적인 이민족)의 땅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라면 호지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명사가 될 수 있었겠으나, 이젠 창졸간에 출현한 바이러스가 수억 명 인간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지구 전체가 호지로 불릴 위기다.

가볍게 봐 넘길 수 없는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봄이 왔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봄은 아주 오래전부터 ‘희망’과 ‘다시 시작함’의 은유였다.

발 빠른 위기대처 능력을 가진 국가들은 이미 많은 수의 국민들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주사했다. 부작용 등의 흉흉한 소문이 없지 않지만, 현재로선 백신에 거는 기대가 어느 나라건 클 수밖에 없다. 다른 뾰족한 해결책이 부재한 까닭이다. 한국도 곧 순차적으로 백신 접종이 이어질 것이다.

지난 2020년 한 해 내내 ‘코로나19 사태’의 춥고 어두운 그늘 속을 걸어온 우리들에게 성큼 다가온 2021년 봄은 특별하고도 특별하다. 앞서 말한 ‘다시 시작돼야 할 희망’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희망을 엔진 삼아 ‘새롭게 시작할 삶’이라는 항해에 힘이 더해지려면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재정비에 봄나들이 만한 게 있을까?

봄을 더욱 의미 있게 맞으려 준비하는 이들이 잠시잠깐 마음의 짐과 바이러스가 주는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특별한 비접촉·비대면 여행지 한 곳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서정과 인심이 여전히 살아있는 청도군이다.

 

청도 운문사 오름길 풍경이 절경이라

꽃향기 바람에 날리면 낭만 여행되고

사계절 맑은 물과 조화 이룬 ‘공암풍벽’

수면위 비친 풍광은 자연 전시회 온 듯

청도 공암풍벽으로 가는 호젓한 산책길.
청도 공암풍벽으로 가는 호젓한 산책길.

◆ 시골 넉넉한 인심을 맛보며 아름다운 사찰 ‘운문사’로

몇 해 전 청도를 찾았을 땐 밭은 물론 거리에도 발갛게 잘 익은 감이 지천이었다. 젊은이들이 줄어들면서 감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한 탓일까? 아까운 감이 땅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게 안타까웠다.

동행한 선배와 함께 비구니 사찰 운문사를 찾아가던 길. 딱히 빼어난 화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붓을 잡으면 색깔 고운 수채화 한 점쯤은 그려낼 듯한 풍경에 빠져 잠시 차를 세우고 감나무 아래를 서성였다.

그때다. 저만치서 나타난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감나무 우리끼요. 따 잡사도 돼. 마이 따서 먹어봐요. 청도 감이 맛있다니까.”

각박한 도시에서만 살아온 기자에게 그런 시골 인심은 초등학교 다니던 40년 전 외가에서나 본 것이라 어색했지만, 동시에 더없이 반갑고 훈훈했다.

인사를 하고 감 하나를 맛봤다. 달콤한 맛도 맛이지만, 밀려오는 어린 시절 추억에 가슴이 더워졌다. ‘인심’과 ‘서정’이란 두 단어로 청도를 기억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내처 길을 달려 운문사 입구에 닿았다. 절까지 올라가는 길이 절경이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 막 연애를 시작한 젊은 연인들이라면 없던 정도 생길 법한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운문사 초입.

 

일렁임 없는 평화로운 수면이 인상적인 공암풍벽 인근 풍광.
일렁임 없는 평화로운 수면이 인상적인 공암풍벽 인근 풍광.

◆ 운문사를 산책하며 읊조린 백석의 절창 ‘여승(女僧)’

운문사가 어떤 내력을 가졌는지 궁금하신가? 그렇다면 청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된다. 이런 설명이 이어진다.

“운문면 호거산에 있는 사찰이다. 557년(신라 진흥왕 18년) 한 승려가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해 도를 깨닫고 이후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했다.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600년(신라 진평왕 22년)엔 원광국사가 중창했다. 신라가 낙동강 서남부로 국력을 키워가던 때 운문사 주위는 병참기지로 역할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건이 후삼국의 혼란을 수습한 후 대작갑사에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내렸다. 이때부터 대작갑사는 운문사로 불렸다. 지금은 26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경학을 배우는 터전이다. 운문승가대학은 국내 승가대학 중 최대 규모. 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 소나무’ 등 보물 일곱 점을 간직했고, 고승대덕(高僧大德)의 영정과 문화재 등도 절 안에 다수 산재돼 있다.”

터가 널찍한 운문사는 ‘언택트(Untact)’하게 산책하기 그저 그만인 사찰이다. 걸음을 빨리 할 필요 없이 느긋한 마음으로 경내를 어슬렁거리다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봄꽃들의 속삭임도 들을 수 있고,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오가는 비구니들의 맑은 눈빛도 만나게 된다.

여승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여자로 살아본 바 없고, 승려가 되겠다는 마음 역시 가진 적 없으니 기자는 평생 알 수 없는 일. 그러나, 추측이 불가능하진 않다. 이미 한 세기 전 한반도 남북을 통틀어 가장 명민했던 시인으로 불린 백석(1912~1996)의 절창 ‘여승’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다.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이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 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 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청도의 또 다른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와인터널.
청도의 또 다른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와인터널.

◆ 마음만 같지 않은 봄을 위로하는 ‘공암풍벽’의 목소리

모두가 같은 삶의 풍파를 겪고 동일한 아픔 속에서 여승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리라.

하지만 다종다양한 인간의 삶 중에서 유독 성직자를 택한 이들이라면 분명 어떤 내밀한 사연 하나쯤은 다들 간직하고 있을 터. 운문사는 그러한 ‘생의 비밀’을 곰곰 생각하게 해준다.

이런 상념에 잠긴 여행자라면 운문사를 나와 발길을 옮길 곳이 빤하다. 그는 분명 공암풍벽(孔巖楓壁)으로 향할 터. 운문사보다 더 조용하고, 더 적요한 공간.

외로운 인간의 본질을 보다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은 공암풍벽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청도8경 중 하나다. 사계절에 따라 운문천의 맑은 물과 조화를 이루는 절벽. 1985년에 운문댐이 조성돼 지금은 ‘바라보는 절경’이지만 과거엔 경주로 가는 도로 옆에 위치했다. 높이 30m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공암풍벽이라 불린다.

아래로는 동창천이 절벽을 휘감아 돌고, 울창한 수림 사이엔 용혈(龍穴), 학소대(鶴巢臺), 석문(石門)이 자리 잡고 있다. 봄에는 꽃향기에 취하고, 여름엔 녹음 우거진 맑은 물이 더위를 잊게 하며, 가을에는 만산홍엽 단풍이 불타고, 겨울엔 눈 쌓인 절벽에 매달린 고드름이 햇살에 반짝이는 기기묘묘한 경치다. 이에 관광객들은 넋을 잃는다. 수몰된 대천리와 공암리 주민들에겐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공암풍벽을 찾았던 날. 기자 또한 세상의 모든 소음을 삼킨 듯 괴괴한 침묵 속에서 조용한 수면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이미 떠나간 계절과 다시 돌아올 계절을 예감하며. 올 봄 청도 공암풍벽을 찾는 여행자들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운문사와 공암풍벽에서의 봄맞이로도 만족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차를 돌려 화양읍에 자리한 ‘청도 와인터널’을 찾아가보길 권한다. 만약 당신이 모주가라면 만족감이 배가 될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홍성식기자님의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