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달구벌북춤보존회 황보영 회장

북 연주는 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믿는 황보영 회장.
북 연주는 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믿는 황보영 회장.

일중 황보영 회장으로 하여금 전통생활민속예술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은 상여소리였다. 시골 장례식에서 상갓집 일을 돕다 구성지게 울려 퍼지는 상여소리에 감화를 받아서 황보 회장은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별의 슬픔과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을 담아 부르던 상여소리는 우리네 농경사회의 장례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식이었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친구들이나 가족모임, 교수들 퇴임식장 같은 소단위의 행사를 다니며 놀이 삼아서 소리를 했다. 자신이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신명에 겨워 소리를 하고 다니다 민요병창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황보 회장은 거기서 진짜 소리꾼들의 노래를 듣고 비로소 자신의 우매함을 깨달았다.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농부의 욕심 없는 순박함과
풍요로움이 배어 있는 북춤에 매료되었다
“북은 사람이 만든 최초의 악기라고
볼 수 있어요. 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할까요”
신명을 돋우는데 빠지지 않는 북소리와
달구벌북춤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예술의 힘, 북춤에 빠지다’를 출간했다

이후에도 전통생활민속예술에 대한 애착은 여전해서 기악, 타악 같은 악기를 배웠지만 어느 것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김수배 선생님에게 날뫼북 장단을 배웠다. ‘날뫼’는 날아온 산이라는 대구 비산동만의 ‘비산농악, 날뫼북춤’을 이르는 말이고, 정월 보름날마다 행해오던 ‘천왕메기굿’에서 파생된 관행이었다. 비산농악에 있던 북춤을 따로 분리해서 날뫼라는 이름을 붙이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황보 회장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 유서 깊은 날뫼북춤에 대한 흥미도 그의 마음을 오래 붙잡지 못했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밀양백중놀이 보유자이고 중요무형문화재 68호인 하보경 선생님의 북춤을 보던 날부터였다. 그의 북춤을 보고 난 후, 오래 더듬어오던 모든 취미 편력을 멈추었다. 무거운 북을 메고도 가벼운 몸짓으로 춤의 삼매경에 빠진 하보경 선생님의 모습은 학이 춤을 추는 듯했다. 황보 회장은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농부의 욕심 없는 순박함과 풍요로움이 배어 있는 북춤에 매료되었다. 사람이 한 가지 이상을 품기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둘러가야 하는지, 황보 회장은 그 이상이란 것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북춤을 만나고 온전히 깨달았다. 소리와 기악, 춤까지 모두 해봤지만 그 중 북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날부터 그는 북춤에만 매달렸다. 새천년에 처음으로 입춤과 할량무를 추며 본격적으로 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북은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북은 사람이 만든 최초의 악기라고 볼 수 있어요. 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할까요? 원시시대에부터 제천의식에서 쓰던 악기였어요.”

신을 부르는 영매. 북은 텅 비어 있음으로써 제 속을 길어 올려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를 크고 넓게, 멀리 보내어 신을 부른다. 하늘과 땅 사이가 비어 있는 것처럼 북이 가진 공간도 하나의 커다란 우주를 뜻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보는 것처럼 정말 텅 비어 있기만 할까? 늘 비어 있는 것 같지만 하늘이라는 변화무쌍하고 광활한 세계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는가. 그 허공에 바람이 있고 비가 있고, 별이 있고, 끝을 모르는 우주가 있다. 하늘이 그렇듯이 북도 제 속에 우리가 짐작 못할 세계를 품고, 때로는 크게 때로는 부드럽게 가없는 울림을 보내지 않는가.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도 점검할 겸해서 대회에 나가보라는 주위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회에 나갔다. 오래도록 북춤에 매료되어 살다보니 2007년도 첫 대회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 받은 것을 시작으로 전국 국악 경연대회 국무총리상, 2008년에는 ‘달구벌북춤’으로 대통령상을 받는 행운까지 누렸다.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대통령상을 받고 나니 밥을 사라는 사람이 있고, 밥을 사주는 사람도 있더라며 웃었다.

“왜 그렇게 전통생활민속예술에 매달렸어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이든 끊임없이 일을 하고 살죠.”

그 많은 일 중에는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입원이고 하고 싶은 일은 북춤처럼 영혼을 매료시키는 행위예술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꼭 일만 하고 살 수 없어서 취미생활을 필요로 한다.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기 위해 배우기 시작한 전통생활민속놀이가 북춤에 이르고서야 그게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던 걸 깨달았다.

황보 회장의 본업은 인쇄업이다. 1976년도에 책 만드는 후가공으로 시작한 인쇄업을 45년째 이끌어오고 있다. 참고서와 문제집을 비롯해서 학원에 들어가는 책을 많이 만들었다. 평생 해오던 일이어서 인쇄업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있다. 한문을 한글처럼 쓸 수 있게 획과 변으로 된 자판을 만들려고 7년째 연구 중이다. 일중(一中)자판으로 2018년 9 월에 3일간 열린 국제대만특허박람회 출품하여 은상과 금상 ‘스페셜 어워드’를 받았으며 동년 12월 서울국제박람회에서도 금상을 받았고, 2019년 1월 대구시장상과 5월 벤처기업부장관상까지 받았다. 인쇄, 출판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제는 후대의 사람들이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반드시 그 작업을 성공시켜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50살을 넘기며 삶의 기대가 자꾸 커졌다. 나이가 들어서 돌아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이 가 있는 걸 알겠더라고 한다. 꿈을 갖고 살지는 않았는데 살다 보니 이상이 높아지며 꿈이 생기더라고. 각 지역마다 전통문화가 있다. 전라도는 판소리, 경기도는 경기민요, 북한은 서도소리, 경상도는 기악과 춤이 있지만 특히 북 놀음과 북춤이 뛰어나며 북 장단도 다양하다. 달구벌북춤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자기소개를 하고 다니다 보니 북춤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할 기회가 자주 생겼다. 더 깊고 구체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북춤에 관련된 책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 눈에 띄는 책도 개괄적인 부분만 언급해둔 터라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북은 장단에 맞춰 박자를 두드리는 것만도 한 장단에 열여덟 박자가 나온다며, 황보 회장은 전문적인 북춤에 관한 책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북의 장단에 대한 세세한 정보는 고사하고 북춤이 백중놀이의 한 장르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결심했다. 대구무형문화재인 ‘날뫼북춤’과 밀양백중놀이북춤 중 밀양북춤, 진도북춤, 장고춤, 소고춤 등, 민속놀이마당에서 신명을 돋우는데 빠지지 않는 북소리와 달구벌북춤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예술의 힘, 북춤에 빠지다’를 출간했다. 황보 회장의 도전은 멈출 줄 모른다. 지금은 농경사회에서 경험한 일을 중심으로 월간지에 칼럼을 쓴다. 5년이나 해온 일이었다. 매사에 열정을 갖고 일을 하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힘닿는 데까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거라고 한다.

“전통예술을 하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주세요.”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관계자를 찾아갔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식전행사에 대구광역시 시도무형문화재 제2호인 날뫼북을 넣어서 세계 각국에서 온 귀빈을 비롯한 많은 관객들에게 우리의 전통을 알려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서면을 만들어서 건의했는데 이렇다 저렇다 하는 대답이 없었다. 일부러 돈 들여서 만든 서면이었다. 황보 회장은 서면을 들고 행사 담당자를 찾아갔다. 대구문화제가 국제행사에 밑질 이유가 없다며 대구만의 브랜드를 만들면 좋지 않겠느냐고 건의했지만, 국제적인 행사에 걸맞은 공연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묵살되었다.

이제는 전국심사위원으로 초빙되고, 예술을 하며 만나는 사람이 많아서 어딜 가든지 당당하게 국악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한다. 전국국악경연대회 심사위원들이 숙소에서 일박을 할 때면, 중요무형문화재와 전공교수, 명인 등 전국에서 40여 명의 심사위원을 비롯한 대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런 자리에서는 곧잘 공연 아닌 공연이 벌어지고, 달구벌북춤을 보여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그럴 때 황보 회장은 달구벌북춤에 이른 피나는 노력의 과정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달구벌북춤에 대한 명분과 의미를 다듬어갈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인쇄업과 달구벌북춤 외에 황보 회장이 한 일이 또 있다. 그것은 개인의 사비를 들여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발간한 서각집이다. 군위 삼국유사면의 도곡 장상태, 소남 신태옥 부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기증하려고 사비를 들여서 휘호 150점을 서각으로 만들었는데, 황보 회장이 개인 사비를 들여서 그것을 책에 담았다.

“적은 연세도 아닌데, 여러 가지 일이 힘겹지 않으세요?”

“아직 반밖에 살지 않은 걸요.”

일사천리로 147살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많은 세월이 남아 있고, 자신이 그만큼 젊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 말은 곧 사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남은 시간 역시 용기 있게 열정적으로 살겠다는 말일 터이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