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면 가득한 댄스오르간.

인터넷 서점에서 시집 한 권을 샀다. 시집이 딱딱하다. 책이 고체이니 딱딱한 게 당연하겠지만 손에 딱 잡히는 시집들과 다르게 유독 뻐덕했다. 책장을 넘기기도 쉽지 않았다. 글도 딱딱한데 글을 안고 있는 종이가 더 단단해 양손으로 버텨야만 했다. 종이책은 눈으로 한 번 읽고, 손끝으로 또 읽는다. 느껴지는 촉감과 넘길 때마다 ‘사락사락’ 방안의 공기까지 넘기는 그 맛이 전자책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할 맛이다.

동네 서점에 가서 손으로 펼쳐보고 사야 실패가 없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서점을 다 잃어버려서 직접 손맛을 보고, 서문 한 구절 읽고 사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동네서점을 간직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독자인 내 잘못이다. 오늘, 박물관 하나를 또 잃었다. 직원의 말로는 지난 해 중순께라고 했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으니 오늘 잃어버린 거다. 입구에 ‘임대’라고 써진 종이가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경주 오르골소리박물관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남편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유적지를 자주 찾아다니던 어느 날, ‘오르골’이라 적힌 이정표가 휙 스쳐지나갔다. 경주에 오르골 박물관이? 얼른 내비게이션에 찾아보았다. 경주IC 부근이라고 나왔다. 차를 돌려 안내에 따라 찾아갔다. 고속도로 전 마지막 휴게소가 보이자 목적지 부근이라고 말하고는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종료 했고, 눈앞에 톨게이트가 나타났다. 많은 차가 드나드는 곳이라 다시 돌아가는 길이 만만찮아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그날은 발길을 돌렸다.

얼마 후, 독서회 회원들과 휴게소 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며 근처에 박물관이 있느냐고 물으니 휴게소 안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랬구나, 왠지 휴게소에서 내비게이션이 멈춰서 오류인가 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전문 해설사가 우릴 맞았다. 박물관 안은 다소 서늘했다. 대부분 오르골이 나무로 만들어진 탓에 20℃정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나무가 틀어져 버린단다. 설명을 따라 오르골 하나하나를 경험했다.

18세기 말 스위스에서 탄생한 최초의 오르골은 다양한 길이를 한 빗 모양의 금속편에 회전하는 원통 돌기를 튕겨 맑은 소리를 내는 실린더 식이었다. 감았던 태엽이 풀리며 울리는 음들이 100년 된 소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맑은 소리가 흘렀다.

박물관 한쪽 벽을 다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고전 영화 속 우아한 여주인공이 양쪽에 섰다. 백설 공주에 나오는 키 작은 등장인물 같기도 한 것이 중앙을 장식해 놀이공원에 온 듯한 분위기이다.

전 세계에 60대도 채 남아있지 않다는 1907년 벨기에산 ‘댄스 오르간’이었다. 댄스파티에 악단 대신 큰소리를 내도록 크게 만든 오르골이었다. 디스크식 오르골과 마찬가지로 구멍 뚫린 천공용지를 갈아 끼우면 다양한 멜로디가 연주되는 원리였다. 파이프와 북 등 오케스트라가 있어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함께 간 회원 중에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흥에 겨워 춤을 추었고, 다들 귀족의 티파티에 초대 받은 듯 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됐다.

유령 피아노, 에디슨이 발명했다는 축음기부터 각종 축음기 등이 한가득 전시돼 있었다. 나팔꽃모양의 관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흑백영화처럼 흘러나왔다. 그 방문 이후 친구들을 데리고 한 번, 학교 동기들과 또 한 번, 아쉽게 지나쳤던 남편과 가족들을 데리고 또 갔다. 일 년에 한 번은 가서 오래 간직한 소리들을 내 마음에 간직하려 했다. 그 박물관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일기나 편지를 보관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공기, 습도, 관리하는 인원에 넓은 공간까지 필요해 개인이 오래 간직하기엔 버거운 일이었을 거라 짐작이 간다. 사라져버린 박물관 앞에서 다시 듣기 힘든 우아한 댄스오르간 소리가 듣고 싶어 녹화해둔 영상을 들으며 더 많은 이가 찾아오도록 했었어야 했다는 늦은 후회를 했다. 무엇을 오래 간직한다는 것은 많은 이의 뜻과 신이 함께 해야 한다는 걸 또 느낀다. 두 손을 모아 본다. /김순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