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경수필가
배문경
수필가

복수초(福壽草)가 피었다.

노란꽃잎이 하늘을 향해 ‘영원한 행복’의 꽃말처럼 빛난다. 오래전 설악산 겨울 등반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꽃잎 위의 눈을 녹이던 복수초를 인터넷으로 다시 보니 반갑다. 겨울 눈 속에서 추위를 이기고 봄을 알리기 위해 피어난 강한 꽃이다.

노란색을 유난히 좋아하던 딸이 집을 떠난 지 달포가 되었다. 딸은 학교를 졸업한 후 공무원시험을 치겠다며 가족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첫해 석 달 동안의 공부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시험을 치고 나오며 그동안의 공부와 시험에서 나름의 노하우를 얻은 것 같았다.

책상 앞이 딸의 자리였다.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딸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다. 그리고 내가 잠든 동안, 내가 깨어있는 시간에도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사이 눈비가 내렸고 바람도 불었지만 안중에 없었다. 합격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시험에 사활을 거는 것이 사는 길임을 일찍이 깨달은 것 같았다. 딸은 책과 문제집, 인터넷 강의에 몰입했다. 지독한 각오가 보였다.

인내의 자리에서 꽃이 피었다.

나는 딸을 위해 기도했다. 어머니의 염원처럼 아니 모든 어머니가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하겠지만 두 손을 모았고 엎디어 절을 했다. 매일 새벽기도가 끝나고서야 출근했다. 눈비가 내리고 천둥이 쳐도 상관없이 그 길을 걸으며 한 해를 보냈다. 답이 그 끝에 있었다. 합격이란 말에 모든 시름을 내려놓았다. 요즘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데, 모지락스러워야 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듯 했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창틀에 화분들이 오종종 놓여있다. 햇빛을 받는 화분은 잘 자라고 그늘에 둔 화분에는 꽃이 잘 피지 않거나 색이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한 번 씩 자리를 바꾸어주고 기름진 흙을 사와서 기존의 흙과 섞어 화초들을 정리한다. 작은 화분에 있던 식물의 뿌리는 둥글게 엉켜진 채 화분 크기만큼 자라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이러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옹골차게 만들어 나갈 힘이 있다.

집에는 빈자리가 생겼다. 딸이 스물 중반까지 제 방을 오가며 울고 웃던 모습을 늘 지켜봤다. 떠난 뒤 자리는 적막하다. 벽에 남아있던 포스트잇도 다 사라지고 쓸모가 없어진 시험문제집이 밖으로 나갔다. 웬만한 짐은 꾸려서 새로운 자리로 옮겼다. 이제는 남은 가족들이 조금씩 당겨 앉으며 벌어진 자리를 메운다.

책상과 의자를 옮겼다. 바깥풍경이 보고 싶어 창문을 맞은편에 두었다. 나는 이제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원하던 책을 읽고, 인생의 본질과 가치를 더듬어 보리라 맘먹고 있다. 추억 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나를 찾아보려한다. 또 그것을 기록하며 깨알 같은 의미들을 찾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얻고자한다. 지금 이 자리는 나만의 꽃을 피우는 자리가 될 것이다.

법구경에는 득생인도란(得生人道難) 말이 있다. 만물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정말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태어난 사람의 삶이 녹록치 않다. 사는 일이 막막할 때, 나는 제우스의 노여움으로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하는 시시포스를 떠올리곤 한다. 알베르 카뮈는 이 형벌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했다.

지금 이 자리를 가장 좋은 자리로 만드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이다. 수많은 인생성공을 거론한 자기 개발서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삶의 자리를 꽃자리로 만드는 일은 오직 최선을 다할 때이며 자기 자신만이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상 시인의 ‘꽃자리’란 시가 떠오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