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샘 L17호에서 출토된 다양한 토기들.

경주 쪽샘 신라고분 유적은 4~6세기 신라 왕경인들의 집단 무덤 유적이다. 쪽샘 유적은 본래 사적 제512호로 지정된 대릉원(大陵園)과 한 묘역(墓域)에 속하는 곳으로 신라 마립간(麻立干) 시기 집중적으로 축조된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또한 적석목곽묘 외에도 쪽샘 유적에는 목곽묘(덧널무덤), 석곽묘(돌덧널무덤), 옹관묘(독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신라 무덤들이 빼곡하게 조성됐음이 밝혀져 신라 고분 연구에 있어 핵심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쪽샘 유적은 지리적으로 신라 궁성(宮城)으로 알려진 월성(月城) 북편에 자리하고 있어 신라 왕경 내 고분군의 형성과 전개, 나아가 신라 왕경 경관 복원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쪽샘 유적에서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다양한 형태의 신라 무덤들이 축조됐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무덤이 바로 ‘목곽묘’이다. 목곽묘는 일반적으로 무덤 묘광을 파낸 뒤 그 내부에 나무로 제작한 곽(槨)을 설치해 무덤주인과 부장품을 함께 묻은 무덤을 말한다. 목곽묘는 영남지역에서 2세기 후반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4세기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다. 한편 몇몇 목곽묘들은 입지의 우월성, 규모의 대형화, 부장품의 대량 매납이 이뤄져 지역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목곽묘는 고대 사회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복잡화 과정을 설명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 중 하나로 현재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목곽묘의 고고학적 특성을 토대로 우리는 신라의 중심 즉 경주에서 ‘사로국’이 어떻게 성장하고 궁극적으로 ‘신라’라는 국가로 발전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경주지역에서는 구정동, 구어리, 덕천리, 황성동 등의 ‘주변’ 유적에서 다수의 목곽묘가 발견돼 보고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라의 ‘중심’ 고분군이 확실한 대릉원과 쪽샘 유적 일대에서는 3~4세기대 목곽묘군이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 이러한 자료의 한계는 앞에서 설명한 사로국의 발전과 신라 국가형성 연구에 있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쪽샘 유적에서 4세기에 해당하는 대형 목곽묘가 새롭게 발견돼 사로국의 발전과 신라 국가형성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쪽샘 L17호로 이름 지어진 이 목곽묘는 전체 묘광 면적이 약 35㎡로 지금까지 경주지역에서 발견된 목곽묘 중 가장 큰 규모다. 또한 더 많은 부장품을 넣기 위해 주곽(으뜸 덧널)과 부곽(딸린 덧널)을 각각 다른 구덩이에 조성한 이혈주부곽식(異穴主部槨) 구조로 축조됐다. 이러한 이혈주부곽식 구조는 김해 대성동 유적과 부산 복천동 유적에서 발견되는 대형 목곽묘와 동일한 모습으로 4세기대 경주지역에서도 김해, 부산과 마찬가지로 최고 지배층의 묘제로 이혈주부곽식 목곽묘가 조성됐음을 알 수 있다.

정대홍 <br>​​​​​​​학예연구사
정대홍
학예연구사

한편 쪽샘 L17호 목곽묘는 후대 건축 등으로 인해 주곽과 부곽이 크게 파괴됐음에도 불구하고 ‘중원식 허리띠 장식’, ‘초기 마구류’, ‘다량의 고식 도질토기’ 등이 발견돼 4세기대 경주지역 대형 목곽묘와 부장품 연구에 있어 많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중원식 허리띠 장식은 경주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로 주곽 서쪽 공간에서 크게 2개의 편으로 출토됐다. 이 유물은 허리띠의 장식판과 드리게에 용무늬(龍文)로 추정되는 문양을 새겨 넣었다. 다음으로 마구류들은 모두 부곽에서 발견됐는데 말을 제어하는데 사용하는 재갈, 말 안장을 고정하는 직사각형태의 결속구, 심엽형(하트모양)의 장식 철기 등이 그것이다. 특히 재갈의 경우 그 끝을 S자형의 고사리 모양으로 만들어 말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형태의 도질토기들이 발견됐는데 기존 경주지역의 제작기법과 동시기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제작기법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당시 경주지역과 주변 지역의 인적·물적 교류의 결과로 이해된다. 특히 발견된 토기 중에 기존 김해와 부산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던 손잡이가 달린 화로모양의 토기등 이 발견돼 앞으로 도질토기 연구에 중요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신라의 중심고분군이라 할 수 있는 쪽샘 유적에서 발굴조사된 L17호 목곽묘에 대해서 살펴봤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경주 중심지역인 쪽샘 및 대릉원 인근에서는 4세기대 집단 목곽묘군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곽묘들은 과연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 이 물음에 단정적으로 답을 할 수는 없지만 쪽샘 동편의 인왕동 유적 일대가 유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쪽샘과 주변 유적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사로국의 발전과 신라 국가형성에 대한 실체를 꾸준히 밝혀 나갈 다양한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