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가 가득한 운동장.

플라타너스는 가지가 잘려 나간 자리에 흉터를 만들지 않는다. 안으로 상처를 말아 넣어서 잘린 단면이 사라지게 한다. 흉터를 볼 때마다 떨어져 나간 가지가 생각나 가슴 아플까봐 그러는 것 같다. 자신의 상처를 쓰다듬듯 플라타너스는 어린 시절 내게 위로가 돼주었다.

방송반이던 나는 매일 아침 명상시간에 읽을 내용을 그 전날 한 편씩 일지에 옮겨 적었다. 그날은 담임이 세 편이나 쓰게 했다. 청소 당번 아이들이 검사를 맡고 교실을 떠났고, 친구 미정이만 복도에서 내가 다 옮겨 적고 나오길 기다렸다. 어슬렁거리지 말고 집에 가라는 선생님의 큰소리에 우물쭈물하던 미정이의 발자국 소리가 계단을 울리며 멀어져 갔다.

집에 혼자 갈 길이 심심할 것 같아 내 글씨가 점점 휘갈겨졌다. 마지막 장을 옮겨 적을 때, 이층 오학년 교실은 내 연필 긁히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선생님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만 쓰고 앞으로 나오라 했다. 한참 전부터 굳게 다문 입으로 서류 같은 걸 살피며 내겐 눈길도 주지 않더니 말이다. 내 책상에서 교탁까지 걷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뭔지는 모르지만 뒷머리에 닭살이 오소소 돋는 걸 느꼈다.

그는 내게 다짜고짜 돈은 왜 훔쳤냐 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내 표정에 화를 내며 출석부로 머리를 쳤다. 두려운 마음에 애써 참았지만 눈물이 볼 위로 굴렀다. 뭐지, 무슨 돈, 어디서 훔쳤단 말인가. 숙직실에 걸린 선생님 옷에서 300원을 왜 훔쳤냐 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그는 훔치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 다그쳤다. 몇 번인지 때리고 다시 묻기를 반복했다. 손목시계를 흔들며 뺨도 몇 대나 때렸고 그때마다 나는 교탁에서 멀어졌다 끌려 왔다. 억울함에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300원을 훔칠 정도로 궁하지 않았다. 매를 맞는 간간히 훔칠 이유가 없는 내 사정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설핏 고개를 드니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운동장 가장자리의 플라타너스가 뉘엿뉘엿 지는 해를 아쉬워하며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었다. 밖이 환할 때와는 또 다른 두려움이 몰려왔다. 어떻게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열두 살짜리가 혼자 감당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훔쳤노라고 거짓말을 했고, 그는 거친 숨을 가라앉히며 이젠 집에 가도 좋다고 했다. 운동장엔 우리 반 남자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퉁퉁 부은 얼굴을 쳐다보며 수군거리던 아이들의 눈빛이 내 등에 꽂히는 걸 느꼈다. 눈시울 붉은 해가 교실 뒤로 뒷걸음을 치고 플라타너스만이 위로하는 듯 교문 앞까지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나를 따라왔다.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랫동안 울었다. 이불호청이 젖었다 다시 마를 때쯤 할아버지는 대문을 열고 들어 오셨다. 벌게진 내 눈을 보고 무슨 일이냐 물으셨고 할아버지가 혼내줘요, 난 억울하다고 울먹였다. 한참을 듣기만 하던 할아버지는 “거 참 무슨 일이고.” 달래는 것도 위로도 아닌 그 한 마디뿐이었다. 선생님이란 이름이 부모보다 높았던 시절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날들이 흘러갔지만 나는 속앓이를 심하게 했다.

오랫동안 혼자였다.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멀찍이 떨어져 품 넓은 플라타너스 그늘에 숨어 있었다. 그런 나에게 나무는 방울 모양의 열매를 떨궈주며 말을 걸어왔다. 버즘같은 껍질을 벗겨내며 잊어버리라고 하는 듯했다.

나는 바보같이 나중에 선생님을 찾아가야지 했다. 내게 왜 그랬냐고, 왜 괴롭혔냐고, 궁금한 모든 것을 따지리라 다짐했었다. 사십 년이 흐른 지금 알았다. 나에게는 아직도 노을이 질 때면 가슴이 아리며 잊지 못할 일이지만 늙어버린 그에게는 기억조차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것을.

지금도 초등학교 운동장엔 나를 위로해주던 플라타너스가 서있다. 어른 손바닥 같은 잎을 누군가의 발 앞에 떨어뜨리며 위로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김순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