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 JM TRADING 김재원 대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김재원 대표.

60년대 70년대만 해도 집집마다 아이들이 대여섯 명 이상이었다. 칠 남매, 팔 남매, 아이가 더 많은 집은 십남매도 예사로웠으니 그야말로 베이비붐 시대였다. 온 나라가 가난에 허덕이는 것이 마치 아이들 때문이라는 듯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내세우며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캠페인을 벌이기에 앞장섰다. 나중에는 둘도 많다며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고 외치는 사이, 사회 전반에 아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먹을 입이 많아서 생활은 곤궁하고 옷차림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엄마들은 틈만 나면 양말 꿰매는 게 일이었고 첫째가 입던 옷을 둘째와 셋째가 물려받는 게 예사였다. 오죽하면 옷 도둑이 다 설치고 다녔을까.

 

양복 만드는 기술 배우겠다고

해동라사 찾아갔던 스무 살 청년

파란만장한 인생의 고비 다 넘기고

헌옷수거만 15년…재활용업체 CEO

“1997년 외환위기 맞으며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많이 생겼고, 헌옷이라도 모아서

불우이웃 돕자고 시작한 것이 헌옷수거…

헌옷 수거업체로 정착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중심에 옷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기이한 운명 같다. 옷과 맺어진 그 질기고도

기막힌 인연을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필연

이라고 해야 할까”

헌옷 수거업체를 찾았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한 김재원 대표님이 따끈한 믹스커피를 주었다. 아파트나 주택, 혹은 의류상가와 공장에서 밀려나온 옷들이 넓은 공장에 태산처럼 쌓여 있었다. 롤러가 돌아가며 헌옷을 실어 나르자 헌옷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직원들이 바지는 바지대로, 점퍼는 점퍼대로, 가방은 가방대로 골라내어 제각각의 박스에 나누어 담았다. 종류별로 분류된 의류들이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포장되어 지게차에 실려 가고, 공장 한편에 포장된 물건들이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믹스커피를 마시며 언제부터 그 일을 했느냐고 물었다. 대표님은 헌옷수거만 15년이라며, 소줏잔 기울여가며 해야 할 얘기를 맨숭맨숭한 정신으로 하자니 말문이 막힌다며 웃었다. 양복 만드는 기술을 배우겠다고 해동라사를 찾아갔던 스무 살의 청년이 파란만장한 인생의 고비를 다 넘기고 재활용업체에 앉아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옷으로 시작된 삶이 이순에 이르도록 옷을 만지고 있다는 얘기다. 15년 동안 마시고 산 먼지가 얼마일까. 옷 도둑이 설치고 형제들의 옷을 물려받아 입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은데 이제는 옷이 가장 싼 시대가 되었다. 옷이 떨어져서 못 입는 게 아니라 싫증나고 유행이 지나서, 작아서 못 입게 된 옷이 멀쩡한 채로 버려진다. 이런 변화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서?

“우리 주위에 헌옷수거함이 생긴 게 언제예요?”

“1997년에 외환위기를 맞으며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많이 생겼고, 헌옷이라도 모아서 불우이웃을 돕자고 시작한 것이 헌옷수거였어요.”

아파트와 주택가에 철판으로 만든 사각형 수거함이 놓이고, 주부들은 아이들이 자라서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옷과 장롱을 비좁게 하는 헌옷을 정리해서 비닐에 차곡차곡 담아냈다. 어차피 버려야 할 옷이 재활용되어 누군가를 도울 수 있으니 멀쩡한 옷을 버려도 흰밥을 버리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그렇게 아 름다운 취지로 시작된 헌옷수거가 민간업체로 넘어가며 재활용업체가 생기고 헌옷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었다. 이제 헌옷은 다른 나라로 가서 새 주인을 만나 새롭게 태어나고,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요한 물자가 되었다. 옷을 나눠 입는다는 아름다운 취지가 글로벌화 되어 가난한 나라를 돕는다는 얘기가 될 것 같다. 먼지가 풀풀 나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자원을 재생산하는 일이고, 사람들은 자신이 입다 버린 옷이 재활용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자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니.

“어떤 연유로 헌옷에 눈을 돌리게 되었어요?”

“유아용 의료총판을 하다 부도를 맞았어요.”

김재원 대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곡절 많은 삶의 여정을 들려주었다. 고급 양복을 만들겠다고 해동라사를 찾았던 꿈 많은 청년이 기성복에 눈을 뜨며 유아복 의류판매를 하게 되었고, 대구 경북 총판의 일을 하다 보니 대리점이 40여 개로 불어나 있더란다. 인생이 무난하게 만 흘러가는 게 아녀서 본사가 부도를 맞으며 그에게도 직접적인 피해가 들이닥치더라고 했다. 40여 개의 대리점에서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오래 거래를 해오던 대리점 점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반품을 받다 보니 나중에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더라고 했다. 그때 대리점에서 받아야 할 외상값도 많았는데 대표님은 수금 장부를 찢어 없앴다고 한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서로가 어려운 시점이어서 차마 점주들에게 외상값 내놓으라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 했다. 부도를 낸 본사 잘못이지 대리점 점주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어려운 지경에 처하고도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이 세상을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지만, 정작 그가 짊어진 어려움은 누가 구해줄지.

 

“빚도 많고 일자리도 잃고, 난감했겠어요.”

“기가 막혔죠. 생각다 못해서 의류업체인 동해섬유를 찾아갔어요.”

생전 처음 가는 곳이었고, 동해섬유의 사장님도 처음 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초면의 사장님에게 부도를 맞고 다 털어먹었는데 재고라도 있으면 팔아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8톤 트럭을 부르더니 차량 가득 물건을 싣고는 가져가서 팔아보라 하더란다. 남자 사각 팬티를 수입했는데 팔지 못하고 쌓아둔 물건이라며. 이름도 모르고 물건값도 없는 사람인데 뭘 믿고 물건을 주느냐고 물으니 사장님 하시는 말씀이, 다 털어먹었으니 물건값 줄 여력도 없지 않느냐며 팔아서 갚으라고 하더란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외상 장부를 찢어버린 사람의 심성을 알아보신 것인지.

김재원 대표는 동해섬유 사장님이 아무 조건 없이 내준 물건을 싣고 시장으로 갔더란다. 다행히 장사 물을 먹고 산 관록이 있어서 대표님은 사각팬티 한 차를 일주일 만에 다 팔았다. 사람이 죽으란 법이 없는지,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방법을 찾을 수 있는지. 동해섬유 사장님의 배려로 사각팬티를 두 차나 더 팔고 나서야 겨우 물건값을 치르고 생활비가 생기더라고 했다. 놀라운 실적이었다.

“일자리가 안정된 것이 그때부터인가요?”

“고군분투하며 뛰어다니다 보니 표 안 나게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사각팬티를 팔던 중, 일을 도와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보루 공장으로 갔더란다. 보루를 만지며 내내 했던 생각이 헌옷이었는데, 장사를 하던 기질과 다져진 바탕이 있어서 김재원 대표는 작게나마 독립해서 자신만의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외국으로 수출을 하면 헌옷장사도 해봄직한 사업이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는 구청과 시청, 부녀회의 모임을 찾아다녔다. 부녀회 회원들에게 외국으로 수출한다며 헌옷을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진심 어린 호소가 통했던지 부녀회의 승낙을 받고 헌옷을 수거하게 되었다. 헌옷 수거함인 철통을 살 돈이 없어서 번개시장에서 얻어온 냉장고 박스에 헌옷을 모았다. 수출의 길을 열려니 자본이 필요했다. 가까이 지내는 형이 대출을 받아와서 동업을 하다 나중에 각자 독립하게 되었다.

그 숱한 어려움을 겪고도 고난이 끝나지 않았던지 재활용업체의 일이 겨우 안정될 무렵에, 대표님은 너무도 큰 슬픔을 겪고 말았다. 여섯 살배기 막내가 짐을 운반하는 지게차에 부딪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고를 낸 사람이 직원이어서 대표님은 막내 잃은 슬픔을 뒤로 하고 그 사람을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탄원서를 썼다. 자신이 읽어도 눈물이 흐르더라는 그 마음의 아픔을 누가 알까.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대표님의 진실함이 여러 번의 좌절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삶이 제 아무리 고단한 역경을 안겨준다 해도 열심히 살려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니.

“이제는 위기를 다 건넌 셈인가요?”

“아직도 불안하죠. 나라의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폐기물에 해당하는 헌옷을 상품화시켜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옷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수출을 하니까 세계정세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고 긴장을 살짝 드러냈다. 사는 게 늘 그렇지.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고, 간혹 삶은 잔인할 정도로 가혹하게 사람을 몰아붙이기도 하니 사회의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말고. 이 시대의 혼돈이 그렇지 않은가. 가게를 얻어서 장사를 시작한 소상공인들이 설마하니 코로나가 덮쳐서 그들을 초토화시켜버릴 거라고 짐작이나 했을라고.

대표님의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인간의 삶이란 게 도무지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든다. 해동라사에서 시작된 옷에 대한 인연이 유아복 총판으로 이어지고, 걸레를 취급하는 보루 공장에서 동해섬유 사장님이 내주신 사각팬티를 파는 상황에 이르다 헌옷 수거업체로 정착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중심에 옷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기이한 운명 같다. 옷과 맺어진 그 질기고도 기막힌 인연을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필연이라고 해야 할까.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