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스탠퍼드대 교수의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수법’에 관한 정리가 진한 공감을 부른다. “전체 국민을 ‘진짜’와 ‘부패한 엘리트’로 양분한 뒤에, 반대편을 불법적이고 비애국적인 악마로 낙인찍는 전략을 구사한다. 다음은 사법부를 내 편으로 채운 뒤에, 언론의 독립성을 압박하는 한편, 공영방송과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다. 선거구와 선거제도를 유리하게 조작하고, 선거 주관 기관도 내 편으로 채운다.”

지난해 10월,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과 벌인 ‘토착왜구’ 설전에서 이념에 찌들어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초라한 지식인의 민낯을 들켰다. 그는 등단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토착왜구,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라고 말했다. 진중권이 이를 ‘광기’라면서 “이분의 영혼은 아직 지리산 어딘가를 헤매는 듯하다”고 맹비판하자, 조정래는 “대선배 작가에 대한 무례와 불경”이라며 신경질을 냈다.

조정래의 발언 중에 정작 놀라운 내용은 “반민특위를 설치해 인구의 150만, 160만에 달하는 친일파들을 처단하자”는 대목이다. ‘책 장사’를 위한 의도된 도발이라는 해석이 있다. 조정래가 꺼내 든 ‘친일파 처단’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먹히는 ‘선동언어’라는 현실이 끔찍하다. 헐렁한 민심의 틈새를 파고드는 선동정치와 국민의 단세포적 반응은 통한을 부른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가덕도’에 더해 제안한 ‘한일 해저터널’ 공약을 놓고 민주당이 또다시 ‘친일 프레임’을 꺼내 들었다. 해저터널이 우리보다는 일본에 더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 공약은 ‘토착왜구 행각’이라는 선동이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같은 정책을 검토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민주당은 곧바로 역풍을 맞았다. 뒤늦게 괴발개발 변명을 늘어놓지만 궁색하기 짝이 없다.

문재인 정권의 악착같은 ‘친일 프레임’, ‘토착왜구’ 선동은 고질병이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식민사관’을 청산하는 일에는 모든 정권이 비겁했다. 역사교육 현장이 ‘식민사관’에 붙박인 ‘강단사학자’들로 장악된 현실 때문에 어느 정권도 학문적 수술을 감행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해야 할 일은 못하면서 상대방을 ‘토착왜구’로 몰아 때리는 유치한 선동에만 몰두하는 민주당의 행태가 참으로 고약하다.

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오래고 지독한 영남권 갈등의 역사를 깡그리 뭉개고 ‘가덕도 신공항’ 광풍이 불고 있다. 맞서기는커녕 ‘원 플러스 원(1+1)’ 개념으로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끄집어내야 하는 제1야당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게 됐다. 자기들도 숱하게 내놓고 검토했던 해저터널 공약을 ‘친일’로 몰아가는 민주당의 망국적 선동정치는 더 한심하다. 모두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 중우정치(衆愚政治) 한복판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로 끌려가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