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따뜻하게 유지하는 티팟.

오후 4시, 홍차를 주문했다. 홍차 세계에 오래전 입문한 S가 문외한인 나에게는 스리랑카에서 자란 우바를, 함께 간 M에게는 중국산 기문을, 자신은 인도산 다아즐링을 시켰다. 이렇게 세 가지 세계 3대 홍차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홍차 전문 카페답게 실내는 앤틱하게 꾸며 놨다. 주문한 차가 나오기 전에 손님이 우리밖에 없기도 해서 돌아다니며 소품들을 구경했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그린 그림, 노란 조명이 켜진 장식장, 차가 담긴 모양이 다양한 틴 케이스가 한쪽 벽면을 장식해서 하나하나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는 사이 따뜻한 털옷을 입은 티팟이 홍차를 품고 우리 테이블에 놓였다. 먼저 찻빛이 싱싱하고 홍차의 샴페인이라 불리는 다아즐링을 맛보았다. 시간을 길게 우렸는지 떫은맛이 약간 느껴졌다. 함께 곁들여 나온 스콘을 한입 머금으니 금상첨화였다. 그 다음으로 루비처럼 진하고 붉은 색이 돋보이는 우바를 음미했다. 내 취향은 우바였다. 그 다음엔 영국인들을 매료시킨 동양적인 향의 기문을 기품 있는 찻잔에 따랐다. 투명한 적색의 깊은 맛이 느껴졌다. 이 차도 좋았다. 차를 마시는 오후 내내 오래된 가구와 레이스 장식의 조명 아래에서 오묘한 홍차의 전설을 들었다. 들으며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라는 영국홍차문화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왜 오후에 홍차를 마실까 궁금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인들은 식사할 때만 차를 마셨다고 한다. 안나 마리아라는 공작부인이 점심은 먹었고 저녁은 아직 먼 오후 4시 전후에 매우 허기를 느꼈고, 참다못해 하녀에게 홍차 한 잔과 간단한 음식을 요청해 먹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애프터눈 티의 기원이 되었고 최상류층 귀족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으로 확산되어 나간 것이 관습의 시작이었다는 설이다. 1890년쯤 수입량도 충분히 늘어나게 되고 가격도 많이 낮아져 부자들의 애프터눈 티 문화를 부러워하던 서민들도 이 무렵이 되어서는 홍차를 부담 없이 마시면서 애프터눈 티 문화를 마음껏 즐기게 된다. 영국에 차가 처음 소개된 지 거의 250년 만에 홍차는 진정으로 영국 국민들을 위한 일상음료가 되었다. 헨리 제임스라는 작가는 “애프터눈 티 라고 불리는 모임에서 보내는 시간 보다 더 아늑한 순간은 삶에서 그다지 많지 않다”라고 적었다. 홍차하면 떠오르는 ‘얼 그레이’라는 단어도 ‘그레이 백작’이라는 뜻으로 총리를 지낸 영국 정치가 이름에서 따왔다. 총리부터 일반 사람들까지 모든 영국인이 즐기던 영국 애프터눈 티 문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서서히 영국인의 일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홍차를 엄청나게 마시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차와 티 푸드를 여유롭게 즐기기에는 현대의 삶이 너무 바쁘고 팍팍해진 탓이었다.

김순희수필가
김순희
수필가

우리도 오래전부터 스스로 홍차를 만들어 마시던 민족이었다. 선덕여왕 때부터 이미 차 재배를 한 하동 차도 녹차가 아니라 발효차인 홍차라고 한다. 일상다반사라는 말은 차를 마시는 일이 밥 먹듯 늘 있는 예사로운 일이라는 뜻이다. 명절 때 차례(茶禮)를 지낸다. 원래 차를 올리던 의식인데 차례가 어느 정도 보편화하면서 이 차를 구하기 어려우니까 술로 대신한 거라고 한다.

“언니, 저는 나중에 영국할머니들처럼 늙고 싶어요.” 영국할머니가 어떻게 사는데 M이 그런 말을 할까 궁금했다. 유학 가서 어렵게 공부하느라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없던 그녀가 진짜 오랜만에 카페에서 친구와 한국말로 수다를 떨던 오후, 하얀 머리의 할머니 세 분이 차를 마시며 두런거리다, 뜨개질도 하다,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있기도 하며 오후를 마음껏 즐기더란다. 그날만 특별히 하는 행동이 아니라 매일 찾아오는 오후 그 시간을 여유 있게 보내는 삶이 부러웠단다.

지인들과 영국할머니들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감미로운 차향이 우리를 스리랑카로 인도로 중국으로 또 영국 어느 골목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한다. 붉은 홍차에 오후의 해 그림자가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