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문송이라던가. ‘문과여서 죄송합니다’라는 자조적 표현 속에는 문과는 이과와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이과적 성향과 문과적 성향이 생각처럼 그렇게 다른 것일까.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여 사람을 생각하는 게 바람직한가. 고등학교 중반부터 우리는 사람을 구분하여 바라본다. 아니 그런 성향을 어릴 적부터 찾아내려 애쓰기도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서조차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며 관심을 쏟는 과목이 다르고 깊이가 다르다. 문과는 수학과 과학을 멀리하고 이과는 문학과 역사를 가벼이 본다. 문과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계산과 분석에 약하고 이과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정서와 감흥에 뒤떨어져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유형별로 생기지 않는다. 기업경영은 문과인가 이과인가. 가정살림은 문과인가 이과인가. 상황은 언제나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균형잡힌 통합적 사고가 날마다 필요하다. 사람을 읽어야 하고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느낌을 짚어야 하고 비용에도 밝아야 한다. 배경지식도 필요하고 미래예측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가. 사람들 사이에 칸을 치고 벽을 만들어 서로 오가는 일마저 막는다. 문과와 이과는 함께 나눌 이야기거리마저 궁핍해져서, 사회는 또 다른 양극화를 겪는다. 넘나들기 어려운 섬들이 생긴다. 문과적 소양과 이과적 능력을 따로따로 구분해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이제 접어야 한다. 공교육을 받는 우리 학생들이 균형잡힌 인성을 형성해가도록 도와야 한다. 문학과 역사, 수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폭넓게 배우도록 도와야 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유네스코(UNESCO)는 21세기에 가르쳐야 할 네 가지 필수영역들로 분석적 사고 (Critical Thinking), 창의(Creativity), 협력(Collaboration), 소통(Communication)을 들었다. 놀랍게도 문과나 이과의 구분이 보이지 않는다. 개별 과목의 이름도 적지 않았다. 전통에 따라 구분된 과목의 이해를 넘어 통합적으로 균형잡힌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서마저 지나친 세부 전공영역의 구분을 경계한다. 전문지식 심화의 필요를 인정하더라도 인성의 널푼수는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문·이과 통합형으로 치른다고 한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교육이 바뀌어 가는 신호로 보인다. 다음세대가 창의와 혁신으로 가득한 내일을 만나려면 다르게 배우고 새롭게 가르쳐야 한다. 문과와 이과 구분에 길들여진 습관을 벗어야 한다. 과학자가 문학에 능하고 역사가가 과학에 밝은 날들이 와야 한다. 새로운 상품개발에 인문학적 경험과 불편함이 스며들고 철학자의 논변에 과학의 발자취가 녹아들 때 비로소 학문 간 균형과 인성 간 조화도 가능할 터이다. 문과와 이과 성향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도 넓어지지 않을까.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따뜻해지고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에는 배려와 상생의 기운이 돌지 않을까. 포용과 협력이 시대의 기운이라면, 문과와 이과의 구분부터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