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1952년, 자신을 살해하려는 육군 대위를 사살한 야당의 맹장 서민호(徐珉濠) 의원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하고 국회가 석방결의안을 통과시켰음에도 이승만 정권은 막무가내였다. 이때 안윤출(安潤出) 부장판사가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서 의원을 석방한다. 그러자 ‘백골단’, ‘땃벌떼’ 등 정체불명의 단체가 법원으로 몰려와 “안윤출을 죽이라”며 난장판을 벌인다.

안윤출 판사는 그 후 3개월간 경기도 지방의 처가로 피신해 있었다. 대신 배석 판사들이 특무대로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이승만 정권은 기어이, 1958년부터 안윤출을 비롯한 연임 대상자의 4분의 1 이상인 20여 법관들을 잘라냈다. 4·19혁명 직전의 풍경이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국회 의석 절대다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힘자랑이 그 끝을 알 수 없도록 점입가경이다. 아무래도 거대 여당은 다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해볼 기세다. 이번에는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가 현직 판사들을 ‘탄핵’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 첫 번째 타깃이 된 인물은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다. 임 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던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서 담당 재판장에게 유죄가 선고될 수 있도록 재판 진행을 지시하고 판결문을 미리 받아 직접 수정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직권남용 혐의의 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임 판사에게 재판개입은 인정되지만, 형사책임을 묻긴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금은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임 판사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1심 판결문에 6차례 등장하는 ‘위헌적 행위’라는 대목이다.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여 인사들에 대해 한사코 ‘법적으로 무죄’라고 우겨오던 지금까지의 주장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또 다른 아시타비(我是他非)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임 판사가 죄를 지었다면, 굳이 그를 두둔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야당의 비판대로 만약 민주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한 하나의 정략으로서 이 일을 벌인다면 심각한 문제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집행정지 인용, 정경심 동양대 교수 징역 4년,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의원직 상실형 선고 등 여권에 불리한 법원의 판결이 이어지던 끝이다. 행여라도 사법부를 겁박해 길들이겠다는 의도의 불장난이라면 이는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가뜩이나 ‘협치’·‘소수의견 존중’ 등 민주주의의 참다운 미덕이 모조리 사라져가는 시대에 ‘삼권분립’이라는 대들보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민주당은 이제 ‘할 수 있는 일’만 들여다보지 말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더 살펴보기를 바란다. 이승만 정권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야당의 맹장 서민호 의원을 용감하게 풀어준 안윤출 판사는 “나는 석방 결정에 도장을 찍을 때 죽음을 각오했다”고 회고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