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승 희
처마 밑에 버려진 캔맥주
깡통, 비 오는 날이면
밤새 목탁 소리로
울었다. 비워지고 버려져서 그렇게
맑게 울고 있다니
버려진 감자 한 알
감나무 아래서 반쯤
썩어 곰팡이 피우다가
흙의 내부에 쓸쓸한 마음 전하더니
어느 날, 그 자리에서 흰 꽃을 피웠다
그렇게 버려진 것들의
쓸쓸함이
한 세상을 끌어가고 있다
사소한 풍경, 그 속의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 속에는 시인의 생에 대한 인식의 틀이 숨겨져 있다. 버려진 캔맥주 깡통, 목탁소리, 버려진 감자 한 알, 시인의 시선이 가닿은 것들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쓸쓸히 팽개쳐진 것들이다. 이런 소외된 것들의 그 쓸쓸함이 세상을 끌어가고 있다는 시인의 말에 깊이 동의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바퀴는 크고 아름답고 힘센 것들에 의해서만 굴러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