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블레이크의 ‘예부터 계신 이’. /(주)사이언스북스 제공

에드워드 윌슨(92) 하버드대 명예교수의 신간 ‘창의성의 기원: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사이언스북스)이 나왔다. 윌슨은 통섭(通攝·consilience),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 사랑) 등의 개념을 만들어 낸 저명한 학자다.

사회성 동물학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섬 생물 지리학,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윌슨은 ‘창의성의 기원’에서 “생물학의 그 어떤 것도 진화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의 말도 “과학과 인문학의 그 어떤 것도 진화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로 대담하게 확장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창의성에 대한 연구는 사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18세기 후반 천재성에서 분리되기 시작한 이 개념은 195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됐고, 지금은 보통 ‘새롭고 적절한 일을 할 수 있는 특성 또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윌슨은 인간의 창의성을 키메라(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이한 짐승)적인 특성으로 파악한다. ‘수십만 년 전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 뇌와 신체,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감정, 중세에 형성된 관습, 명확한 의미도 목적의식도 없이 신 같은 능력을 휘두르는 기술’을 모두 갖춘 존재가 현재 인간의 모습이자 인간 창의성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의성을 계발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과학이 섞여야 한다는 게 윌슨의 강조점이다. “과학과 인문학은 창의성을 낳는 동일한 뇌 과정에서 기원한 것”이고, “통일된 과학과 인문학”의 조합만이 “인간 지성의 잠재적인 토대”라는 것이다. 우리 인류는 창의성 덕분에 과학을 토대로 한 첨단 기술 문명까지 이뤄냈다.

윌슨에 따르면, 우리가 어디로든 선택한 곳으로 가고자 할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게 과학이다. 그리고 이 과학이 무엇을 만들어 내든 그것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건 인문학이다.

따라서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토대로 삼을수록 인문학도, 창의성도 범위가 넓어진다. 인문학과 과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자기 이해’이기 때문이다.

‘창의성의 기원’ 194쪽.   /(주)사이언스북스 제공
‘창의성의 기원’ 194쪽. /(주)사이언스북스 제공

“사람들이 흔히 믿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인문학은 과학과 별개가 아니다. 현실 세계나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과정 어디에서도 둘을 가르는 근본적 틈새 따위는 없다.”

“과학이 인문학의 토대가 된다면, 인문학의 범위가 더 넓어진다. 과학적 관찰이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다루지만, 인문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무한한 많은 환상 세계까지 다룬다.”

저자는 이처럼 과학과 인문학이 균형 있게 하나가 될 때 새로운 계몽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학이 사실적 지식을 제시한다면 그 지식이 가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인문학이어서다. 과학과 인문학이 더 깊이 융합할 때 두 분야가 상승효과를 보게 되고 창의성 계발 역시 새롭게 이뤄지게 된다.

이 책은 창작 예술에 대한 저자의 찬양으로 가득 찬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사랑했고 본인이 나비학자이기도 했던 나보코프 등의 소설, 인간 감정의 토대를 이루는 이야기와 인물의 ‘원형’을 보여주는 위대한 영화들, 사냥꾼의 황홀경과 생물학자의 탐구 정신을 융합하는 자연 저술 장르의 논픽션들, 인간의 감각 경험을 확대하는 미학적 놀라움을 담은 회화 작품들이 윌슨의 비평이 곁들여 소개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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