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미국 대통령이 바뀌었다. 바이든 새 대통령은 ‘회복과 포용을 지표로 삼아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선거는 지난 11월에 있었지만 지나온 길이 순탄하지 않았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군중이 의사 진행 중이었던 의회 건물 안으로 들이닥쳐 소동과 폭력을 휘두른 일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 여부가 문제가 되어 그는 하원에서 탄핵까지 당하였다. 민주주의의 모범이라 여겼던 미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전 세계가 보고 말았다. 미국은 이대로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실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회복하려면 미국은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혼돈의 과정에서 미국을 흔들었던 구호들을 살펴보자. ‘다시 위대한 미국으로 돌아가자’는 그들의 외침에는 백인우월주의가 숨어 들었다. 건국으로부터 다양한 출신 사람들을 품기로 했던 미국인들이었지만 ‘피부색’에는 약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자 레비츠키(S. Levitsky)와 지블라트(D. Ziblatt)는 미래를 걱정하며 ‘민주주의는 어떻게 죽는가(How Democracies Die)’를 저술했다. 트럼프의 리더십이 백인 중심으로만 진행되면 참된 민주주의의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급기야 선거의 결과도 부정하지 않았는가. 책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된 적이 거의 없었음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그런 전통을 세워가기를 기대하였다.

미국이 보여줘야 한다. 미국이 먼저 인종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가 외쳤던 ‘꿈’이 실현되는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를 부정한 끝에 폭력과 탄핵에 이르는 경험까지 하지 않았는가. 민주주의의 모범은 ‘많은 사람의 생각’을 담는 데서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다른 생각, 다른 문화, 다른 배경.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며 배격하고 공격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는 이내 막을 내린다.

우리는 어떤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나름 성공적으로 달성하며 달려가는 길목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는가 아니면 배척하는가. 편을 가르고 진영을 나누는 주장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하트만(Michael Hartmann)은 그의 책 ‘엘리트제국의 몰락’에서 ‘소수의 세력이 지배하는 닫힌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포괄적이면서 환대하는 열린 엘리트사회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엘리트구조로는 민주적 공존을 기할 수가 없다. 모든 구성원이 존중받고 차별없이 참여하는 사회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는 구현된다.

‘우리는 늘 반대편에 서 있지만, 한 번도 적이었던 때는 없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의 말이다. 반대는 더 나은 무엇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다른 생각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힘으로 하여 미국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해 가야 한다. 새 미국에 높은 기대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