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본래 조선을 건국할 당시의 건국이념인 유학은 긴 세월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탄탄한 논리로 기틀을 이룰 바탕을 갖추고 있었다. 그 논리의 핵심이 바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움’이다. 무슨 대단하고 고매한 이론이 아니라 사람 하나하나가 본인이 처한 위치에서 주어진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륜의 논리가 국가나 가정을 지탱할 수 있는 원초가 될 수 있으며 사회질서 또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향리에 사창(社倉)을 열어 빈민을 구제하고, 향약을 실시하였던 조선 후기 학자 권구 선생은 그의 저서 병곡집에 당론(黨論)을 기록했다. 권구는 정치에 몸을 담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한 학자의 눈으로 중도에서 조선 중기 이후에 발생한 붕당정치가 망국의 원인이 된 핵심을 꿰뚫어보고 정리한 글이 바로 당론이다.

그 내용은 ‘조선이 처음 건국하여 예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니 유학자가 배출되고 문화와 교육이 융성했다. 이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도리가 분명해져 성인들이 서로 계승하여 어진 정치는 깊이가 있고 끼친 은택은 두터웠다. …. 안으로는 정권을 장악한 권신이 없고, 밖으로는 함부로 날뛰는 강한 주변국이 없으니 결코 뽑히지 않을 기반과 범하기 어려운 형세는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백성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심이 오랜 평화와 안정에 오만해져 미래의 안목이 없어지고, 선비의 버릇이 문장의 폐해에 빠져 온화하고 인정이 두터운 기풍이 적어졌단 말인가! ….’

선조 때 동인과 서인의 견해 차이에서 시작된 당론은 정치가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에 권구는 붕당정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애당초 누구도 국가에 해악을 끼칠 마음으로 당을 세우고 논의를 주장하여 서로 공격했던 것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권구는 이 글에서 견해를 달리한 당론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게 그 원인을 두고 있다. 독사 같은 무리와 경박하고 조급한 부류가 목전의 은원과 이익에 매달려 당론을 좌우하기 때문에 결국 나라를 그르쳤다는 오명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들은 오직 자신의 영욕만을 생각하는 자들이다. 자신이나 패거리의 이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상대를 공격하고 법을 비틀고 조작하다보니 결국 물고 뜯는 지경으로 몰아가 정작 옳고 그름과 정사(正邪)는 사라지고 없다. 예나 지금이나 당론으로 인해 정치가 분열되어 나라를 그르쳤다고 모두 입을 모은다.

‘맹자 양혜왕장구’에 창업수통(創業垂統)이라는 말이 나온다. ‘국가의 좋은 전통을 후세에 영원히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지금 당장 혼란스럽고 어려워도 먼 훗날의 국가번영을 위해 정의를 탄탄한 반석에 올리고 바른 정치의 공정함으로 정도를 지켜야 한다.

지금 서울, 부산 보궐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 후보자들의 출마의 변은 정책보다 다른 후보의 약점부터 먼저 헐뜯고 나온다. 이젠 성숙된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만이 이런 한심한 부류들을 정치권에서 영원히 몰아내어 국가의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창업수통이 절실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