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br>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미술품 소장가인 손창근 씨가 대를 이어 간직해온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국보 180호인 세한도는 1844년 58세의 추사가 유배지 제주도에서 그린 문인화이다. 귀양살이하는 자신을 잊지 않고 사신의 통역관으로 중국에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에게 답례로 그려 보낸 것이다. 세한도는 이상적 사후에 민 씨 일가로 넘어갔다가 일본인 후지스카의 손에 들어간 것을 서예가 손재형이 간곡하게 부탁하여 양도받았다고 한다. 그 후 사채업자 이근태를 거쳐 개성 갑부였던 손세기가 수집한 것을 아들 손창근 씨가 소장해오다 기증을 한 것이다.

세한도란 제목은 논어 자한편의 ‘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에서 따온 것인데,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라야 비로소 그 지조의 일관성이나 인격의 고귀함 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다. 추사는 세한도의 발문에서 이상적에게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림을 받은 이상적이 청나라에 가져가서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문인 16명의 찬시(讚詩)를 받은 데다, 뒷날 김준학의 찬(贊)과 오세창, 이시영의 배관기(拜觀記) 등이 함께 붙어서 세한도는 10m가 넘는 긴 두루마리가 되었다. 지금까지 전해진 내력이 파란만장한 만큼 문화재적 가치는 더 높아져 값으로 매길 수가 없지만 굳이 따진다면 1천억 원도 넘을 거라 한다. 나는 물론 세한도의 진본을 본 적이 없다. 본다고 한들 일천한 감식안으로 그 예술적 가치나 담겨 있는 고매한 정신과 품격을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그래서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지 특별하고 절실한 감동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추사의 그림보다 내가 더 감동하는 세한도는 겨울 들판이다. 겨울 들판에는 송백(松柏) 대신 억새와 갈대, 쑥대 같은 마른 풀들이 한 올 미련도 회한도 없이 허허로운 모습으로 삭풍에 전신을 내맡기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 밑에는 혹한에도 얼어 죽지 않고 월동하는 풀들도 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사는 데까지는 살아 있으려는 생명이 참 엄연하다. 더 경이로운 건 이 황량한 들판에서 겨울을 나려 온 철새들이다. 가끔씩 고니와 기러기도 보이지만 대부분이 청둥오리들인데, 수백 마리가 군무를 펼치며 날아와 들판에 내려앉는 걸 보며 오씩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콤바인으로 추수해 낟알초차 없는 이 얼어붙은 들판에서 도대체 무얼 먹고 영하의 엄동을 견디는지, 방한복을 껴입고 들길을 걸으면서 나는 내내 마음이 시리다. 고상한 품격이나 높은 뜻이 아니라, 그냥 생명의 엄연함이 시리게 와 닿는 것이다. 걸핏하면 죽네 사네 소란을 떠는 인간들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나약하고 엄살이 심한가. 나는 오늘도 살아있는 세한도를 한 바퀴 돌아왔다.